잡문/기타 잡문2017. 12. 11. 23:47
균형으로서의 일상
파마(유진 파마)의 주장은 간결하다. 시장이 너무도 효율적이라 주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효율적 시장에서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파마는 그들을 '합리적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은 필요한 모든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고, 적극적으로 그 정보를 활용하여 누군가 이익을 취하기도 전에 주가를 즉시 조정해 버린다. 그래서 다시 균형이 회복된다. 주가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완전히 반영하기 때문에 미래에 관한 예측은 효율적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1. 로버트 해그스트롬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주)한국투자교육연구소 부크온, 2017

만일 나의 삶이라는 것이 어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효율성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내가 하루 온종일 고민하는 수많은 생각들과 의사결정이 먼 관점에서 보면 어떤 정답과도 같은 효율성을 향해 움직이는 인과관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9시 반에 내가 A 과장님께 메일을 써야겠다고 결정한 것도, 오후 3시에 B라는 주제를 갖고 미팅을 하기로 생각한 것도 사실은 가장 효율적인 어떤 방식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 

운명론에 집착하던 시절엔 이런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엔 인간의 삶이 기계적인 것과 같아서 이미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듯이 시간과 공간이 명쾌하게 이미 정리되어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결정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어떤 물질, 입자와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희노애락도 이런 물질의 흐름일 뿐이라는 기계론적 사고관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만일 삶이 결정론적 세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완전한 확률에 의해서 움직이긴 하되, 그러한 확률은 아주 사소한 어떤 것에 따라서 뒤틀리는 것이라면? 나라는 존재가 내 삶의 관찰자가 되는 순간 내 삶 자체가 이미 결정되어 있던 확률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내가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는 네오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때부터는 균형점에 위치하는 삶이라는 것이 유아기적인 이해수준이라고 느낄 지도 모를 일이다. 

관찰은 예리해지면 예리해질 수록, 좁아지면 좁아질 수록, 그 영향력은 점점 더 확장된다. 삶에서 내가 의사결정하여 확률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하는 부분이 커지면 커질 수록, 삶은 이미 내게 예정된 것에서 조금 뒤틀린다. 그것이 돈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는 더 커다란 문제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주체가 나라는 주체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럿 존재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으면 서로는 원래 그들이 했어야 하는 언어가 아니라 완전 엉뚱한 어떤 말을 할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그들이 내게 조금도 기대하지 않을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 번 이런 행동을 보이게 되면 그들은 그 때부터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새로운 전제조건을 추가하기야 하겠지만, 나는 다시금 그들의 사고 판단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 확률은 끊임없이 뒤틀리고, 그들의 예측은 틀린다. 내가 하는 예측이 맞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타인의 예측은 틀리게 만들 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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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