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5. 23:27
히터
내 책상 위에는 적당히 내 핸드폰의 3배 정도 크기 되는 수준의 아담한 히터가 있다. 내 방이 북풍인데다가, 창문도 세련되게 마감이 되어 있지 않아서 살살 우풍이 들어오는데, 이 때문에 히터가 없으면 팔과 얼굴이 금새 차가워진다. 

그래도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겨울철에도 가끔은 창문을 열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갈 수록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지더니만 2년 전엔 참지 못하고 히터도 사버렸다. 전기로 작동되는 놈이라 전기세가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굉장히 작은 놈이니만큼 나와봤자 얼마나 나올까 싶은데, 실제로 전기세를 살펴보면 사기 전이랑 산 후의 차이를 알아차리기가 거의 힘들긴 하다. 

그래도 작은 히터가 있으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는 달리 상체를 뎁혀 주는 역할을 해줘서, 가끔 생각없이 앉아있다보면 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평소 집안은 어둡게 해놓는 걸 즐기는 편이다. 직접 조명을 싫어해서 불도 거의 켜두지 않고 붉은 빛이 나오는 스탠드만 켜두는 편인데, 히터를 켜두면 그 자체로도 붉은 조명 역할을 해서 굳이 스탠드를 켜놓지 않아도 아늑한 분위기가 나서 꽤 그럴싸 하다. 

예전에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할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어림잡아 10배는 되는 히터가 있었다. 10배라고 해봤자 내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높이의 적당한 히터였는데, 동아리방쇼파에 앉아 있으면서 옆에 켜두면 꽤 그럴싸한 분위기가 나서 좋아했다. 캠퍼스를 거닐면서 추위에 떨던 선후배나 친구들도 동아리에 들어오면 일단 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는데, 그 때는 그냥 그런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그렇게 있다가 정전이 났던 어느 날이 기억난다. 갑자기 풍경이 확 어두워지고, 불이 모두 사라졌는데, 사람만 남아서 놀라서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당시엔 스마트폰이란 게 없었고, 핸드폰도 불빛이 강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동아리방에 촛불 같은 묘한 옛날 물건도 있었더랬다. 그걸 켜놓고 어둠 속에서 잡담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갔던 기억도 나는데, 히터가 없어서 춥기야 했지만 당시엔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내게 히터 역할을 했었더랬다. 

집에 혼자 앉아서 히터를 의지하고 앉아 있으면 몸이 식을 걱정도 없고, 어둠도 걱정은 안된다만, 당시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온기는 딱히 없어서 묘하게 그 때가 그립다. 


'잡문 > 기타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멍때리고 싶을 때  (2) 2017.12.10
비트코인  (0) 2017.12.07
싫어하지 않는 척  (0) 2017.12.04
혼자 사는 것  (0) 2017.12.03
최선  (0) 2017.12.02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