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2. 4. 22:47
싫어하지 않는 척 
회사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었다. 회사 사람 중 A가 나를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점심을 먹으러 사람들과 이동해서 자리에 앉을 때면 A는 애매하게 나와 떨어져서 자리에 앉는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보란듯이 그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그를 불편하게 만들며 밥을 먹곤 한다. 한 번 자리에 앉아버린 상태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애매해진 A는 당황하면서도 자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회사에서 같이 논의를 하거나, 메일을 주거 받거나, 커피를 마실 때에도 A는 애매한 태도로 팀장을 비웃고 자리에 없는 팀원들을 비웃는데, 그러면서도 본인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들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곤 하는데 그렇게 지적하는 모습이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언제 한 번은 팀장을 성대모사하며 농담을 하길래 재밌다고 칭찬을 하니, A가 내게 말했다. 'B씨가 없을 때엔 B씨 성대모사를 하기도 해.'라며 빈죽거렸다. 그가 나 없는 곳에서 킬킬대며 나를 성대모사하는 꼴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이 오래 지나다보니 나도 A를 싫어하게 된 것 같다. 아니, 아마 꽤 오래 전부터 나도 그를 싫어했던 것이 틀림없다. 회사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을 떠올리면 일단 그 사람부터 떠올리니 말이다. 

그 와중에도 서로를 향해 욕지꺼리를 하거나, 대놓고 비난하거나, 짜증은 부리지 않는다. 일대일로는 아니어도 다대다로는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진솔한 얘기라거나 마음 속 이야기는 하지 않을 지언정, 그래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개인사도 가끔 이야기 한다. 

나이가 들면서 명확해지는 건 싫어도 싫어하는 걸 티내는 것보다는 티내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A도 나를 향해 싫어하지 않는 척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가끔은 그 '싫어하지 않는 척'이 '대놓고 싫어하는 척'보다도 더 얄미워서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싫어하지 않는 척 덕분에 그나마 부대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도 그래서 그를 향해 싫어하지 않는 척 매일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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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