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4. 26. 18:34
사랑니
얼마 전 사랑니를 뽑았다. 

오른쪽에 나 있던 사랑니 두 개는 1년 반 전에 뽑았다. 위에 난 사랑니는 외부로 돌출되어 있어서 별 문제 없었다. 아래쪽이 문제였다. 아랫니는 매복 사랑니였다. 이빨이 위로 자라는 게 아니라 옆으로 자랐으니까. 옆으로 자라면서 멀쩡히 위로 솟아 있는 어금니를 건드렸다. 한 편으로는 턱 아래 신경도 건드렸다. 매복 사랑니가 자리잡을 때마다 내 어금니가 흔들렸고, 신경선을 건드렸다. 통증이 컸다. 그래서 뽑았다. 

오른 쪽을 뽑은 그 날 의사는 왼 쪽 사랑니도 바로 뽑으라고 권유했다. 꽤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 표정을 고개를 슬쩍 들어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약속을 잡았다. 오른 쪽을 뽑고 정확히 4주 뒤였다. 

오른 쪽 사랑니 뽑기는 별다른 통증이 없었다. 괜스레 겁을 먹고 사 두었던 치통 진통제도 쓸모 없었다. 이틀 정도 얼음 찜질 하면서 약을 먹고 나니, 내가 이빨을 뽑았는지 안 뽑았는지도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네이버 지식인을 열어서 '사랑니 뽑고 나서 정말 아프네요.'라고 써있는 글을 보며 혼자 킬킬거렸다. 하나도 안 아픈 걸 괜히 엄살 부리긴. 

반대 편 사랑니를 뽑기까지 1년 반이 걸렸다. 의사가 잡아준 4주 뒤 예약은 그냥 안나갔다. 병원에서도 특별히 전화가 오지 않았다. 마치 예약이 안 잡혀 있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병원에 다시 간 날, 간호사가 날 보며 이제야 왔냐고 투덜댔다. 날 기억할만큼 문제가 됐었나? 내가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핸드폰 번호가 011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선 내게 꽤나 연락했던 모양이었다. 핸드폰 번호를 010으로 바꾼 게 2012년인데 여태 011로 저장돼 있다니. 당연히 핸드폰 번호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나? 뭐, 병원을 탓할 건 하나도 없다. 어차피 예약을 어긴 건 나니까. 내 탓이다. 

의사는 '이젠 좀 뽑을 생각이 들었나요?'라고 특유의 퉁명스런 말투였다. '네.' 라고 밝게 답했다. 그러곤 자리에 누웠다. 얼마 뒤 간호사가 다가와 '따끔해요.'라고 말했다. 마취 주사였다.

이빨 뽑는 건 2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의사는 내 이빨을 무슨 연장 다루듯이 사정없이 흔들어 재꼈다. 오른 쪽 이빨 뽑을 땐 그리도 간단히 뽑더니 왼쪽은 뭐 이리 오래 걸릴까. 마취로 인해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선 콜드 플레이의 'Viva La Vida'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뭔가 툭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는 솜을 한뭉텅이 뭉쳐서 내 이빨에 끼워주었다. 꽉 씹으란다. 20분 내내 입을 잔뜩 벌리고 있어서 턱이 아팠다. 아프지만 솜은 꽉 씹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접수대로 갔다. 자판기로 가서 돈을 내라는 안내를 받고, 정신 없는 가운데 버튼을 눌렀다. 병원을 나서서 약국으로 갔다. 

이빨을 뽑은 지 벌써 9일이 지났다. 왼쪽 이빨 사랑니가 있던 자리엔 구멍이 느껴졌다. 윗이빨 구멍은 그나마 낫다. 핏덩이가 구멍을 막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랫이빨이 문제였다. 여긴 핏덩이도 없고 그냥 뼈와 신경이 공기 중으로 노출된 기분이 들었다. 

걸을 때마다 웅웅 거리는 느낌이다. 밥 먹을 때마다 찝찝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진통제가 호황이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면 일단 이빨부터 아프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도 이빨이 말썽이다. 약을 챙겨먹는다. 이래서 제약주가 인기인 건가. 한미약품이 대박친 이유가 이거구나. 제약주를 사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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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4. 25. 21:11


저자 : 유즈키 아사코 / 옮긴이 : 윤재 
출판사 : (주)소미미디어 
초판 1쇄 발행 : 2017년 1월 20일 

1. 장난감 함께 갖고 놀던 친구를 추억하며. 
우리 집엔 전화기가 두 대 있었다. 한 대는 시외 전화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 대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쓰는 전화기였다. 아파트 단지용 전화기는 3자리 번호만 누르면 걸렸다. 단지 내에서 서로 친구가 되면 서로 집 전화 외우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난 친구들 전화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같은 호수의 3층과 4층에 있는 놈들이었다. 당연히 번호는 외웠지만 전화는 안했다. 우리집이 5층이었으니까. 집 가는 길에 3층, 그리고 4층에서 벨만 울리면 됐다. 어림잡아 5번 찾아가면 3번은 거절당했다. 3층 아줌마는 날 친구 공부를 방해하는 눈엣가시로 여겼다. 뭐, 상관 없었따. 어차피 딴 녀석들에게 전화하면 됐으니까. 3층, 4층 친구보다 더 친한 놈은 따로 있었다. 난 그 친구에게 전화하곤 했다. 

난 12동 아파트에 살았고, 그 친구는 15동에 살았다. 고작 3동 차이인데, 그 사이에 아파트가 무려 6 채나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일단 받았다 싶으면 찾아간다고 했다. 녀석에게 특별히 거절은 없었다. 우린 친했다. 적어도 그 때의 난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가 날 찾아오지 않고, 내가 그 친구를 찾아간 건 녀석에게 장난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3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당시 3살이면 큰 차이였다. 친구의 형은 성숙한 어른이었다. 친구를 찾아가 형을 만나면 형은 날 웃으며 맞아주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는 형에게 물려받은 장난감이 많았는데, 형은 의젓하게 장난감을 갖고 놀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나가서 놀았다. 그 당시 우리에겐 그게 정말 멋져 보였다.   

형이 나가면 난 친구와 몇 시간이고 놀았다. 

근데, 이젠 내가 그때 어떻게 놀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수십 개의 장난감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한 쪽에는 정의의 사도, 다른 한 쪽에는 악의 무리가 있었다. 숨겨진 비밀 장소도 있었고, 주인공을 위한 기지도 있었다. 어릴 때 일리아드를 읽어봤을리가 없는데, 사실 우린 일리아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서사 구조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이야기꾼이었다. 

친구와는 5학년 때 헤어졌다. 그 뒤로 연락을 못했다. 고등학교 때 잠깐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긴 하다. 연락은 곧 끊겼지만. 친구의 얼굴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얼굴은 물론 함께한 기억도 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시간도 사라졌고, 우리가 만든 이야기도 끝끝내 책으로 출판도 못하고 없어졌다. (제길, 만일 그 이야기가 남아있었다면 난 호메로스보다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즈키 아사코가 쓴 '짝사랑은 시계태엽처럼'은 어린 시절을 먼지 속에서 들추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타카라코는 독특한 캐릭터다. 어른인 주제에 아이처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일본 나이로 29살인 그녀는 한국 나이로 치면 30살이 넘는다. 30살이 넘어도 그녀는 나이에 구속되지 않는다. 수상 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할 때마다 그녀는 장난감을 떠올린다. 물론 어른들이 흔히 생각하듯 '어떻게 장난감을 만들어야, 히트를 칠 수 있지?'라는 칙칙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캬, 순수하기 짝이 없다. 마치 10살 시절 내가 몸만 어른이 되어버리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타카라코가 그녀의 짝사랑인 니시지마를 관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 같이 만화책 캐릭터마냥 순수하다. 어디 캐릭터 뿐인가? 이야기 전개 방식도 우리들이 어릴 때 많이 봤던 만화 극장의 전개 방식을 묘하게 훔쳐왔다. 이거 참 소설은 소설인데, 미묘하게 만화 같으면서도 일드 같다. 그렇다고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 것이 꽤나 읽는 맛도 있다. 

타카라코는 장난감 기획자라는 직업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탐정역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액션가면 히어로역도 도맡고 있다. 그녀를 따라 어른을 위한 동화 속에 빠져들어가다 보면,  어른들이 펼치는 아이같은 순수함에 괜스레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 흔해 빠진 일본식 전개이긴 하다. 그래도 이 책은 괜찮다. 이미 결말은 다 보이는데, 그래도 읽는 책도 있지 않은가? 이게 그런 책이다.  

2. 3줄 요약 
- 장난감 갖고 놀던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책. 
- 어린이 같은 어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 
- 뻔한 결말, 착한 결말의 일본드라마랑 별반 다를 것 없지만, 그래도 좋은 그런 책.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4. 24. 23:44
2016년 9월 30일의 편지 
벌써 9월이 끝나서 가을의 초입이라는 말도 조용히 식어가고 있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고, 소매도 적당히 걷고, 인중에 땀도 쓱 닦고, 모니터 옆 선풍기를 끄면, 뒤쪽에 앉아 있던 차장님이 말씀하셔. - 밥 먹으러 가자. - 사무실 문을 지나, 다시 유리로 된 자동문을 지나면, 화장실 옆에 검은 엘리베이터 문이 3개 있어. 사람들은 11시 40분부터 엘리베이터 앞 공간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밥 먹으러 갈 마음의 준비를 해. - 오늘은 뭘 먹을까? - - 지하식당? 중국집 아니면 얼큰한 찌개? - 검은 구조물로 고급스럽게 장식된 회사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오면, 회사 건너편 건물 1층에 ‘10월 OPEN’이라고 빨갛게 쓰여 있는 브런치 카페의 공사현장이 눈앞에 들어와. 요즘 강남의 인테리어 공사현장들이 다들 그렇듯, 유리 벽 밖에는 나무판자를 대놓고, 그 앞에 적당한 광고 문구들을 붙여놓고 있어. 분당 아주머니들을 겨냥한 브런치 요리들이 사진과 함께 붙어있지. 
아저씨들은 지나가면서 한마디 씩 하곤 했어. 어제 했던 얘길 오늘도 또 했던 거야.  

“망하겠네.“ 
“그러게, 얼마나 갈까? 6개월?“ “아뇨. 전 3개월 정도 예상해요.“ 

조용히 따라가면서 브런치 요리들 옆에 선보인 빙수 이미지들도 보여. 

‘녹차 실 빙수‘ ‘허니 밀크티 실 빙수‘ ‘달콤 카라멜 실 빙수'

그러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오늘 날씨가 몇 도였나 살펴보았어. 오후 11시 50분, 날씨는 21도쯤이었던 것 같아. 내일이 되면 이제 10월이야. 오늘 날씨랑 1주일 뒤 날씨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예보를 보면서, 내가 이 브런치 가게에 오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어. 

지난번 이곳에 있던 가게는 횟집이었어. 불과 3개월 전, 여긴 장어집이었어. 불과 9개월 전, 여긴 일식집이었어. 불과 1년 6개월 전, 여긴 파스타 집이었어. 바로 이곳. 우리 회사 건물 바로 옆, 그리고 지하철역에서는 겨우 3분 거리. 아줌마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지만, 미묘하게 이쪽 거리는 아저씨들의 유동인구가 많은 간호대학 속 남학생 같은 골목이야. 점심만 되면 떼를 지어 아저씨들이 흘러나오고, 10시 오전이나 3시 오후 같은 애매한 시간에도 꽉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처럼 아저씨들이 흘러나오는 곳이야. 그래서 이곳에서 장사하려는 아저씨들은 생각한 거지. '그래, 여기에 아저씨를 위한 장소를 만들어야겠어.' 그리고 망했어. '그리고 다시 생각해본 거지. 그럼 아줌마를 위한 장소를 만들면 되나?' 그리고 또 망했어. 

우리 집 앞에도 그런 곳이 있었어. 내가 벌써 10년간 봐왔던 공간인데, 원래 여기가 빨간 간판이 있던 곳인지, 초록색 간판이 있던 곳인지 잘 기억나지 않아. 2005년 겨울에도 여전히 망하지 않은 대통주를 판매하는 삼겹살집 앞에서 난 어떤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틀 전 네가 왔을 땐 지나치지 않아서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겠지만, 여긴 골목이 꺾이는 모서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다리꼴 같은 땅이야. 지금은 '우삼겹'이라는 이름의 고깃집이 있어. '맛은 소고기이나, 고기는 돼지고기입니다.'라는 광고문구가 가게 안에 자랑처럼 적혀있지. 그 전에 거긴 맥주집이었어. 여름엔 정말 잘 됐었는데, 추운 겨울 동안에 방한하느라 바깥 유리를 포장마차처럼 꽁꽁 싸매다가 사람들이 안 와서 망했어. 그 전에도 거긴 맥줏집이었어. 마찬가지로 여름내 장사 멋지게 하다가, 겨울에 촌스러운 비닐을 씌워서 망했지. 그 전에 거긴 고깃집이었어. 검은 페인트로 모던미를 강조한 가게였는데, 여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다가 겨울에 포장마차처럼 외관을 싸매서 망했어. 우삼겹집은 과연 올해 겨울에 포장마차가 될 것인가. 중요 관전 포인트야.

(주. 2017년 현 시점에서 '우삼겹'집은 포장마차처럼 외관을 꾸미지 않았고, 결국 망하지 않았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사람이 기억을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익숙한 장소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개념을 하나의 쌍으로 묶는 거라고 하더라. 예를 들어, 우리가 등교하는 거리. 외대앞 - 던킨도너츠 - 편의점 - 학교 정문…과 같은 장소들에 내가 외우려고 하는 개념을 붙이는 거지. 외대앞에는 Ella, 던킨도너츠에는 Es, 편의점은 Mi, 학교 정문은 Destino와 같은 형태로. 사람이 가장 기억하기 쉬운 곳이 장소라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매일 같이 마주치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그 장소를 보았던 기억은 뇌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 동면하듯 자리잡는대. 그래서 그 기억에 무언가 다른 생각들을 심을 수만 있다면, 그 기억들도 내게는 중요한 것이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말인데, 내 주변에 자리잡은 공간들이 허무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회사 앞에 과감히 자리잡은 브런치 카페도, 항상 망하기 일수였던 위치에 있는 우리동네 우삼겹집도, 낙성대를 지나 항상 조용히 공부할 자리를 마련해줘서 소중하지만 장사는 안되는 것 같은 지하 카페도, 이번에 지하철 역에 새로 리모델링한 소중한 내 단골 편의점도 모두 망하지 않고 내 풍경 속에 남아 있어 준다면. 가을이 끝날 즈음이 되면 낙엽이 질 거야. 눈이 내릴테고, 그 위엔 벚꽃이 피겠지. 그러고 나면 매미가 쩌렁쩌렁 울어대는 여름이 올 거야. 그 무덥고 짜증나는 일상 속에서 나의 풍경은 바뀌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주길. 그렇게 남아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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