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1. 20:13

코골이 범인은?
스노어랩(SnoreLab)이라는 수면 어플을 아시는지? 

스노어랩이란 잠잘 때 내가 코고는 소리를 녹음해서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측정해주는 수면어플이다. 잠자기 전에 이 어플을 켜놓고 잠자면 나의 코고는 소리를 녹음할 수 있다. 

어떤 잡지에서 이 어플을 추천받고 나서 흥미가 동해서 설치해보았다. 어차피 난 코 안고는 사람이니까 이런 게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음날 아침 난 충격을 받았다. 새벽 1시 20분부터 새벽 3시에 이르는 순간까지 난 아주 격렬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커겅! 겅, 겅겅!' 남사스럽게시리 이게 대체 뭔 소리람.  

2년 쯤 전에 회사에서 팀 워크샵을 갔었다. 규모가 작은 팀이라 6명 인원이 단촐하게 다녀온 워크샵이었다. 안면도 근처의 리조트를 하나 잡아놓고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놀았다. 숙소로 돌아와선 조촐하게 맥주나 마시면서 커피내기 섯다 게임을 했다. 새벽 1시쯤 되서 다들 피곤해지니 잠자리에 들었다. 나와 선배, 그리고 팀장님은 안방에서 자고, 다른 사원과 과장님 그리고 부장님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이불을 깔고 누워서 인터넷 서핑하면서 10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눈이 피로해질 쯤에 잠을 청했다. 그런데 한 5분 쯤 지나고나니 방 한 쪽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팀장님이었다. 거칠어진 숨소리는 무호흡증이 염려될 정도로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로 바뀌다가, 어느 순간 폭격이라도 맞은듯 거친 폭발음으로 바뀌었다. 선배를 바라보니, 선배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어둠 속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말없이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팀장님의 미안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민망한 표정,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이거 참 책망할 수도 없고 정말 미안하네, 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 하셨다.  

1달 전 쯤 친구들과 횡성의 한 리조트로 MT를 갔다. 공적 관계가 아닌 완전히 사적인 자리라 거리낄 거 없이 술을 들이켰다. 1차는 삼겹살에 소주, 2차는 맥주, 3차는 노래방, 4차는 야외에서 뛰어다니다가, 5차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양주를 먹었다. 아마 새벽 3시 혹은 4시까지 술을 마셔댔던 거 같은데 몸이 녹초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놀았던 거 같다. 

이젠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들 숙소에 한 자리씩 자리잡고 누웠다. 슥 둘러보니, 침구가 부족했다. 그래서 난 거실 소파에서 잔다고 했다. 이미 2차 때부터 방에 들어간 사람도 있긴 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거실 공간이 탐났던 다른 두 친구들은 거실 마루에 쓰레기들을 한 쪽으로 밀어버리고 침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아침이 됐다. 

"아니, 간밤에 누가 그렇게 코 골던데! 그렇게 시끄러운 소린 진짜 첨 들어봤어! 다들 잘 잔거야?" 

내가 누워있던 소파와 벽을 하나로 나눠졌던 방에서 자고 있던 친구가 한 말이었다. 나야 아침 9시 될때까지 꿀잠 잤으니 말할 것도 없고, 거실에 누워있던 두 남정네들도 별 말이 없었다. 다른 방에 있던 또 다른 친구는 거실에서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럼 용의자는 나를 포함한 3명 중 한 놈이다.

방에서 새벽 내내 잠자리를 뒤척였던 몇 명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우리 셋을 쳐다본다. 찔린다. 만일 SnoreLab이라는 어플을 써서 내가 코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단호하게 혐의를 부정했을 텐데. 이젠 내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  피곤할 때는 시끄럽게 코를 곤다는 걸 알아버렸다. 울 아버지, 어머니도 시끄럽게 코를 고는 사람이니 유전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나머지 두 친구는 별 말이 없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억울해 보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이다. 

"됐고, 라면이나 먹자." 

싱크대로 향해서 해장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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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