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3. 23:48


고등어
고등어는 좋아하는 생선이긴 한데, 흔히 먹지 않는 생선이다. 아버지 따라 횟집에 갈 때 스키다시로 나오는 고등어구이가 살면서 먹은 고등어의 95%를 차지한다. 고등어는 날씬하고 길쭉한 모양이 포인트다. 기다란 몸통을 따라 뼈를 발라 먹는 게 제 맛이다. 어릴 적엔 뼈에 달라붙은 살점 하나 남기는 게 죄악 같아서 빠짐없이 발라 먹곤 했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줄곧 내륙에 살았지만, 중학교 때까진 바닷가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횟집에 자주 갔었다. 김치찌개에 고등어를 넣어서 먹는 집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선 주로 꽁치를 넣어서 먹었다. 꽁치 김치찌개를 먹던 것도 중학교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고교시절 이후론 김치찌개에서 돼지 목살이 대체된 적이 없었다. (김치만 나온 적은 있긴 하지만.) 대학교 때 서울에 올라오고 나니, 서울에선 돼지가 아닌 김치찌개 파는 곳이 드물었다. 대학 근처 김치찌개 집 두 곳에서도 모두 돼지를 넣어서 팔았다. 

고등어 회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맛봤다. 당시 성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청년회 사람들과 함께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을 둘러보는 여행을 갔었다. 그때 처음 맛봤다. 그 전까진 노량진에서 파는 광어, 우럭이 회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었다. 고등어회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회는 서울까지 옮겨오기 어려워서 서울 사람은 먹어보기 어려웠을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당시 서울에선 그런 음식을 접해본 적 없었으니, 그 설명은 그럴싸했다. 

서울에서 고등어보다 더 보기 힘든 생선은 아마 청어일 것이다. 살면서 청어를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청어를 좋아해서 이 생선을 주제로 수필을 썼다. 그 글을 읽으면서도 그 생선이 대체 뭔 맛일까, 아마 고등어 맛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고등어나 청어나 둘 다 등 푸른 생선이니 그게 그거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고등어'를 찾아보면 비슷한 말로 청어(鯖魚)라고 나온다. 여기서 청어(鯖魚)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먹은 청어(靑魚)와 다르다. 청어(靑魚)란 본디 등푸른 물고기를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등푸른 물고기의 대명사가 고등어가 아니라 청어(靑魚)였으니, 예전엔 고등어가 흔치 않았나 보다. 

흥미롭게도 고등어를 지칭하는 청어(鯖魚)의 청(鯖)자가 '청어 청'이라는 뜻이다. 고등어와 청어는 엄연히 다른 물고기인데 한자에선 마치 같은 물고기인 양 설명된다. 우리 선조들도 청어와 고등어가 여간 헷갈리긴 했던 것 같다. 

이렇게 고등어 글을 쓰다 보니 근처 횟집에 가서 스키다시로 구워진 고등어만 하나 얻어와서 먹고 싶다.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 사와서 구운 고등어랑 먹으면 제맛이겠지. 물론 고등어는 9월에서 11월이 제철인 가을 물고기라고 하니 제대로 맛보려면 아직 4개월은 지나야 한다. 

옛 말에 '가을 배와 고등어는 맛이 좋아 며느리에게 주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전어구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라고 하는데, 가을철 어지간히도 며느리에게 생선을 안 챙겨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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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