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7. 16:27
휴일의 평화 - 심보선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전에는 평화로웠습니다
조카들은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늙으셨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후 또한 평화롭습니다
둘째 조카가 큰 아빠는 언제 결혼할거야
묻는 걸 보니 이제 이혼을 아나봅니다
첫째 조카가 아버지 영정 앞에  
말없이 서 있는 걸 보니 이제 죽음을 아나봅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휴일의 평화
4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장장 9일 연휴가 끝나간다. 만일 내일 휴가를 내서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11일 휴가가 될 수 있었으나, 애초에 연휴 기간 동안 어디 놀러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서 회사에 다시 돌아가 일하고 있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한다. 연휴 기간 동안 책도 많이 보고 가보지 않았던 곳도 여기저기 갈까 생각을 해뒀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 것도 짜지 않은 덕택에 구체적이지 않은 시간만 보내다가 9일이 지나가고 말았다. 대학생 시절이 끝날 즈음  '와, 정말 이따위로 지겹게 집에서 개차반으로 내 시간을 탕진해도 되는걸까. 회사원이 되면 다시는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할텐데.'라고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 나는 과거 내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너가 틀렸어.' 

어제는 새벽 4시에 잤다. 잠잘려고 누웠던 건 새벽 1시였는데 누워서 핸드폰으로 요즘 핫한 정치 뉴스를 보다가 3시간이 흘러버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인터넷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양태를 관찰하는 건 즐겁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꺼내서 인터넷 공간 안에서 분노에 씩씩대며 몇 시간 내내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선거가 끝나고 다시 다른 일에 집중할 즈음이 되면 썰물처럼 빠졌다가, 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다시 밀물처럼 몰려서 이야기 바다를 이룬다. 

여튼, 오늘은 마지막 휴일이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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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