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미분류2017. 4. 29. 21:50

저자 : 이용배 
출판사 : (주)살림출판사 
초판 1쇄 발행 : 2003년 7월 30일 

1. 정보량의 폭발 
난 원래 애니메이션이 싫었다. 원작이 있다면 만화책을 선호했다. 
같은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도 꺼렸다. 원작이 있다면 책을 읽는 편이었다.  

매체가 가진 속성 때문이었다. 만화책이나 책은 어떤 문장이나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다. 반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따라서 '움직임'이 주체가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 전에 '너의 이름은'이라는 애니메이션이 히트를 쳤다. 애니메이션이 히트를 친 뒤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소설을 써서 발간했다. 소설로 '너의 이름은'을 읽으면 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 너를 어딘가에서 봤어. 너의 이름은!' 하고 외치는 순간 과연 그 둘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두 묘사된다. 명확히 그 둘의 얼굴을 보여준다. 소설은 완전히 내 상상에 넘겨진다. 내가 화면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열등한 매체로 묘사하는 것 같다. 

실은 그렇지 않다. 만일 어떤 매체가 정보량으로 우월을 매겨야 한다면, 영화와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은 책보다 훨씬 데이터가 풍부하다. 이번에 읽은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역사'에서도 이 점을 설명하고 있다. 영상은 대사를 이용한 문자, 이미지, 음악이 복합된 복합 예술이란 것이다. 문자 하나만을 사용하는 책과는 정보량이 차원을 달리한다. 이른바 정보 빅뱅이다. 

물론 정보가 넘쳐 흐르는 곳에서는 이런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해당 정보가 어떤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책을 열심히 읽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주장한다. 당연하고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무조건 책으로 회귀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어제 포스팅한 '어휘력이 교양이다'를 쓴 사이토 다카시는 책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TV, 음악, 인터넷에서 흘러넘치는 정보를 더 열심히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수동적 자세로 정보가 흘러가게 놔두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정보를 캐치하자는 것이다. 더 많은 방송과 영상을 찾아보고, 이런 방송도 2배속 3배속으로 들으라고 주장한다.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더 찾아보고, 더 검색해보라고 한다. 

그의 주장은 합당해 보인다. 또한, 더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혹시 오버워치(Overwatch)라는 게임을 해보았는가? 엄청나게 화면 전환이 빠르다. 실로 어지러울 정도로 정보량이 많다. 그래서 게임을 1시간 마치고 일어서면 현기증이 나곤 한다. 단순히 게임이라는 매체가 나쁜 거라서 어지러운 것이 아니다. 정보량이 넘쳐나느라 이를 처리하는데 뇌가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1달 전쯤에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오버워치만 장작 3시간을 하다가 지겨워진 나머지 우리는 오랜만에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해보기로 했다. 놀랐다. 엄청나게 속도가 느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99년도에 이 게임을 했을 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힘들었었다. 당시 나왔던 모든 게임 중에 가장 빠른 편에 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완전히 느린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보량을 받아들이는 양이 확연히 바뀌었다. 

앞으로 30년 뒤, 세상은 얼마나 더 변할까? 아마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더 빨라지고, 더 극적이며, 더 많은 정보량을 주고자 할 것이다. 그걸 내 몸이 적응해줄 수 있을까. 별 시답잖은 고민이다. 애니메이션 역사와 분류를 다룬 책을 읽다가 별 이상한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매체의 정보량에 대한 개념은 이 책에선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책을 읽고 제가 생각한 부분이니, '책에서 나온 내용이구나'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2.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역사' 도식으로 정리해보기 


3.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역사' 3줄 평 
-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제작방식의 종류를 교과서적으로 정리한 책.
- 굳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와 매체의 개념까지도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  
- 2003년도 책이라 최신 애니메이션 사례가 없는 점이 아쉬움. 


Posted by 스케치*
독서/미분류2017. 4. 28. 22:50

저자 : 사이토 다카시 / 옮긴이 : 장은주 
출판사 : 한빛비즈(주)
전자책 발행 : 2017년 4월 6일 

1. 결국 책이다. 
러시아로 유학 가버린 이후로 연락이 끊겼지만, 그 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있었다. 같은 대학교 미술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선배였다. 선배는 러시아어 전공이었다. 생판 모르는 언어라서 많이 고생했다고 했다. 같은 과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는 러시아에서 살다 온 친구들도 많았다고 했다. 선배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특별히 외고를 다닌 것도 아니었고, 러시아어를 미리 배웠던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죽을 똥 살 똥 공부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와 달리, 대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대개 독서광이 많았다. 보다 많은 책들을 읽고,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자신이 배운 전공지식을 잘 접목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는 독서광이었다. 전공이 러시아어이니 만큼 도스토예프스키도 읽어봤을 것이다. 경제공부를 좋아했던 사람이니,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같은 책 뿐 아니라, 마르크스 같은 고전도 공부했을 것이다. 영어에도 능통했던 사람이니, 아마 마크 트웨인이나 헤밍웨이도 읽어봤을 것이고, 한자도 공부했던 사람이니 법강경 같은 책도 읽어보지 않았을까. 

어느 날, 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나와서 선배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선배와 난 당시 이슈가 되었던 시사 문제에 대해서 함께 토론을 했었다. (어떤 주제였는지는 이젠 기억나지 않지만.) 선배와 난 서로 입장이 달랐다. 의견을 주고 받다보니 난 내 근거가 빈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말문이 막혀서 이렇게 얘기했다. 
"저 비록 말로는 얘길 잘 못하겠지만, 글로 쓰면 잘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러자 선배가 말했다. 
"그건 아냐. 결국 그 사람이 쓰는 말은 그 사람의 전부인걸." 

처음엔 그 말이 기분 나쁘게만 들렸다. 아니, 실제로 말보다는 글에 능숙한 사람도 있는 거 아냐. 유명한 소설가 중에서도 실제론 말을 더듬더듬 하지만,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왜 저렇게 얘기한담? 

하지만 선배의 말은 10년이 넘어서도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은 정곡을 찔렀다. 난 딱히 말하기보다 글을 더 잘 썼던 게 아니었다. 애당초 난 내 자신의 언어로 논리를 전개할 힘이 없었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고는 내가 그걸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할 때 내 주장은 사상누각이 되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내가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파악했더라면 그 매체가 말이 되든 글이 되든 논리를 펴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말주변이 없다면 천천히, 떠듬떠듬한 말이라도 말이다.

'어휘력이 교양이다'는 바로 이런 부분을 자극하는 책이다. 어휘가 곧 교양이고, 그 사람을 드러내는 지표라는 저자의 주장은 실전 경험에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뻔히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퍼즐 속 빠진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톱니바퀴같은 체계로 어휘를 익혀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저자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어떻게 어휘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한 번쯤 시간 내서 읽고 마음에 새겨둘 부분도 있다. 가볍게 쓰고 있던 내 어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답은 결국 '독서'로 회귀한다. 고전을 읽고, 에세이를 읽고, 소설을 읽고, 심지어 TV를 보고 노래를 들을 때도 독서하듯 읽어나가라고 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책 읽는 게 답이다. 10 여년 전 기억 속 선배가 독서광인 것이 달리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2. '어휘력이 교양이다' 도식으로 정리해보기 


3. '어휘력이 교양이다' 3줄 평 
-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강조하는 책 
- 책이 아닌 다른 걸 볼 때도 책을 보듯이 깊게 파악하라고 하는 책 
- 사실 이런 충고 외에는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왠지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책 


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4. 27. 21:56

저자 : 잭 런던 / 옮긴이 : 권택영
출판사 : 민음사 
초판 1쇄 발행 : 2010년 10월 22일 
전자책 발행 : 2012년 6월 30일 

1. 인생 혹은 개생? 
내 경험 상, 친구 넷 이상이 모여 있으면 그 안엔 항상 우두머리가 생겼다. 중학교 시절처럼 '내가 짱(혹은 통)이야.'라고 하는 건 아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그걸 알게 된다. 친구들 모두가 자신들이 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라고 할테지만. 거기엔 반드시 우두머리가 있다. 

같은 모임 안에서도 우두머리는 시시각각 바뀐다. 어떤 녀석이 갑자기 관계 주도권을 가져갈 때가 있다. 한 턱 쏠 때 그렇다. 혹은 같이 여행가자고 말을 꺼낼 때도 그렇다. 아니면, 맛집을 찾아가거나 술자리를 갖자고 얘기를 꺼낼 때도 그렇다. 그럴 땐 다들 얘기를 먼저 꺼낸 그 친구를 인정해준다. 존중하고 띄워준다. 그 친구는 잠시 우두머리가 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관계의 중심이 된다.

물론 우두머리는 원래대로 돌아온다. 어째설까? 아마 일종의 본능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른의 관계는 '부드러운 문명' 속에 있다. 이 책 '야성의 부름'에 등장하는 주인공 개 '잭'이 다른 개 무리에서 폭력과 죽음을 통해 우두머리가 된 과정과는 다르다. 폭력과 싸움을 통해 대장이 결정되는 건 어린시절로 끝난다. (나이가 들어도 조폭을 끌고 다니고, 사람들을 겁박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건 예외로 치자.) 

소설 '야성의 부름'은 어디까지나 '개의 이야기'이다. 개로 시작해서, 개로 끝난다. 개의 시선으로 인간의 모습을 비춘다. 개의 시선은 흥미롭다. 개가 바라보는 인간 군상도 이 책의 흥미 포인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개 자신에게 있다. 개가 무리 속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확보하는지, 독립된 개체로서 어떻게 판단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마치 스티브잡스 평전 읽듯 위대한 개 이야기를 좇아가게 된다. 

내가 보고 있는 이야기가 '개'의 이야기 인지, '독립된 자유를 지닌 인간'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주인공 개 '벅'은 주인이 있다. 5번이나 바뀐다. 사실 주인이 있냐 없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벅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삶의 보람과 행복을 추구한다. 주인이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릴 때는 단호하게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며, 자유를 쟁취한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자본가가 설립한 회사 안에서 노동자로서 근무한다. 우리 시대는 자유주의, 개인주의 사회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벅'처럼 행동한다. 회사 안에서 근무하지만 우리도 내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한다. 거친 근무 환경 속에서도 보람차길 바란다.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때는 이에 항의하고 권리를 쟁취한다. 사랑하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그래서일까, 개의 삶 (이른 바 개생)을 얘기하는데, 인생을 논하는 책처럼 느껴진다.

소설이 끝나고, 해설가는 '벅'을 '니체적 초인'이 형상화 되었다고 표현한다. 저자인 '잭 런던'이 다윈의 적자생존, 니체의 초인 사상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니 이런 해석도 그럴싸하긴 하다.

다만, 일반 독자로서 굳이 니체까지 끌고 와서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이 책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살면서 무언가를 갈구하고 추구하는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혹은 사랑받고자 하는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딱 그 정도 가치가 있다.  

2. '야성의 부름' 도식으로 정리해보기 

3. 3줄 요약 
- 소재가 참 특이한 책
- 서사 구조가 탄탄하고, 캐릭터가 매력 있어서 재미있는 책 
- 삶(인간 관계, 목표의 추구, 사랑, 삶의 지향점)에 대해 종합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