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5. 2. 17:51

저자 : 알랭 드 브통 / 옮긴이 : 정영목
출판사 : 은행나무
초판 1쇄 인쇄 : 2012년 2월 22일
전자책 발행 : 2012년 8월 24일 

1. 주목받지 못하는 공간에 관하여 
"인문적 기술은 이미 자신의 찬가를 부를 만큼 불렀으니, 이제 기계적 기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데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기계적 기술은 편견 때문에 너무 오래 격하되어왔는데, 인문적 기술은 기계적 기술을 그런 상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난 1년에 적어도 한 번 여행을 간다. 주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나름 철저하게 준비 하는 편이다. 먼저 교통편(항공편)을 예약한다. 언제 출발해서 언제 돌아올지 결정되면, 어디를 방문할지를 결정한다. 하루 3끼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이동 편을 고민한다. 비자라던가 해당 국가, 지역 주의사항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비용을 결산한다. 모든 과정은 항상 같은 흐름 따른다. 따라서 특별히 고민할 게 없다. 

실제 여행은 항상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에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범주 밖에서 떠도는 일은 없다. 결국 내가 원했던 명소를 들르게 되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게 된다. 이런 여행들은 자유여행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패키지 여행을 통해 경험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부류로 분리시키긴 어렵다. 결국 유명한 절, 멋진 레스토랑, 박물관, 고성 같은 장소를 가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다른 여행을 꿈꾼다. 현지인들이 갈 만한 장소를 찾는 여행이다.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장소를 훑어보고, 여행자들이 가지 않을 법한 곳에 간다. 이런 여행은 상상 속에서 매력적이다. 남들이 안 갈 법한 곳에 간다는 차별점이 있다. 마치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지 않고, 책장 어딘가 숨겨진 보물같은 책을 발견해나가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몇 년 전 우리 고모는 가족과 함께 이런 여행을 떠났다. 파리에서 1주일간 머무는 여정이었다. 고모의 여행에서 '머문다'라는 말이 더 명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의 행선지가 숙소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모와 고모 가족들은 파리에 있는 아파트를 하나 빌려서, 다른 어디를 가지 않고 그 아파트 근처에서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샹젤리제라던가 에펠탑은 가보지도 않고.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처 마트에 들러 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었다는게 고모 여행의 전부였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알랭 드 브통이 떠난 여행도 일반적인 여행의 범주를 벗어났다. 

화물선, 물류,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가, 로켓 과학, 그림, 송전 과학, 회계, 창업자 정신, 항공 산업.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공간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주 관심사를 살짝 벗어난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녁시간 8시 혹은 9시에 뉴스를 보면서 이 공간들을 다루는 이야기는 얼마나 자주 등장했는지. 가끔 관련 뉴스가 등장하더라도 손바닥 위 모래 한 줌처럼 기억 속에서 훅 사라지고 만다. 

알랭 드 브통은 삶의 공간 뒤켠에 자리잡은 우리네 창고 같은 공간을 누비며,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려낸다. 그의 에세이가 다소 작가적 감상에 젖어있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런 감상이 없다면 이런 공간이 내뿜는 미묘한 정취를 명확히 묘사하기 어려웠을런지도 모른다. 가끔은 나도 그렇게 여행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P.S. 근데 이 책 제목은 완벽한 낚시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도식으로 정리해 보기 


3. ‘일의 기쁨과 슬픔’ 3줄 평 
- 현대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공간들을 조명하는 책. 
- 건조한 묘사가 매력적이지만, 가끔 알랭 드 브통의 감상이 툭툭 튄다. 
- 이 책 제목은 낚시다. 책 제목을 보고 기대하게 되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5. 1. 20:13

코골이 범인은?
스노어랩(SnoreLab)이라는 수면 어플을 아시는지? 

스노어랩이란 잠잘 때 내가 코고는 소리를 녹음해서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측정해주는 수면어플이다. 잠자기 전에 이 어플을 켜놓고 잠자면 나의 코고는 소리를 녹음할 수 있다. 

어떤 잡지에서 이 어플을 추천받고 나서 흥미가 동해서 설치해보았다. 어차피 난 코 안고는 사람이니까 이런 게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음날 아침 난 충격을 받았다. 새벽 1시 20분부터 새벽 3시에 이르는 순간까지 난 아주 격렬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커겅! 겅, 겅겅!' 남사스럽게시리 이게 대체 뭔 소리람.  

2년 쯤 전에 회사에서 팀 워크샵을 갔었다. 규모가 작은 팀이라 6명 인원이 단촐하게 다녀온 워크샵이었다. 안면도 근처의 리조트를 하나 잡아놓고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놀았다. 숙소로 돌아와선 조촐하게 맥주나 마시면서 커피내기 섯다 게임을 했다. 새벽 1시쯤 되서 다들 피곤해지니 잠자리에 들었다. 나와 선배, 그리고 팀장님은 안방에서 자고, 다른 사원과 과장님 그리고 부장님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이불을 깔고 누워서 인터넷 서핑하면서 10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눈이 피로해질 쯤에 잠을 청했다. 그런데 한 5분 쯤 지나고나니 방 한 쪽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팀장님이었다. 거칠어진 숨소리는 무호흡증이 염려될 정도로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로 바뀌다가, 어느 순간 폭격이라도 맞은듯 거친 폭발음으로 바뀌었다. 선배를 바라보니, 선배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어둠 속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말없이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팀장님의 미안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민망한 표정,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이거 참 책망할 수도 없고 정말 미안하네, 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 하셨다.  

1달 전 쯤 친구들과 횡성의 한 리조트로 MT를 갔다. 공적 관계가 아닌 완전히 사적인 자리라 거리낄 거 없이 술을 들이켰다. 1차는 삼겹살에 소주, 2차는 맥주, 3차는 노래방, 4차는 야외에서 뛰어다니다가, 5차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양주를 먹었다. 아마 새벽 3시 혹은 4시까지 술을 마셔댔던 거 같은데 몸이 녹초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놀았던 거 같다. 

이젠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들 숙소에 한 자리씩 자리잡고 누웠다. 슥 둘러보니, 침구가 부족했다. 그래서 난 거실 소파에서 잔다고 했다. 이미 2차 때부터 방에 들어간 사람도 있긴 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거실 공간이 탐났던 다른 두 친구들은 거실 마루에 쓰레기들을 한 쪽으로 밀어버리고 침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아침이 됐다. 

"아니, 간밤에 누가 그렇게 코 골던데! 그렇게 시끄러운 소린 진짜 첨 들어봤어! 다들 잘 잔거야?" 

내가 누워있던 소파와 벽을 하나로 나눠졌던 방에서 자고 있던 친구가 한 말이었다. 나야 아침 9시 될때까지 꿀잠 잤으니 말할 것도 없고, 거실에 누워있던 두 남정네들도 별 말이 없었다. 다른 방에 있던 또 다른 친구는 거실에서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럼 용의자는 나를 포함한 3명 중 한 놈이다.

방에서 새벽 내내 잠자리를 뒤척였던 몇 명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우리 셋을 쳐다본다. 찔린다. 만일 SnoreLab이라는 어플을 써서 내가 코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단호하게 혐의를 부정했을 텐데. 이젠 내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  피곤할 때는 시끄럽게 코를 곤다는 걸 알아버렸다. 울 아버지, 어머니도 시끄럽게 코를 고는 사람이니 유전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나머지 두 친구는 별 말이 없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억울해 보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이다. 

"됐고, 라면이나 먹자." 

싱크대로 향해서 해장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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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4. 30. 22:38

저자 : 애거서 크리스티 / 옮긴이 : 권도희 
출판사 : 황금가지
초판 1쇄 발행 : 2004년 6월 4일 (원작 발표 : 1949년) 

1. 제 개인적 감상은 '충격'입니다. 
(이 포스팅은 추리소설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스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난 딱히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셜록홈즈 시리즈와 1~2편의 뤼팽 시리즈, Y의 비극,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딱 이 정도가 전부다. 요즘 유행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라던가, 정유정 작가의 책들도 추리소설 계열에 묶어버리면 갑자기 읽은 책이 확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좀 다른 얘기 같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뭔가 정해진 틀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확하게 탐정도 있어야 하고, 용의자도 보여야 하고, 사건 현장도 마치 조감도를 보듯이 펼쳐져야 한다. 

전형적인 추리소설 하면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래도 '애거서 크리스티'다. 그녀가 썼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아주 흥미롭게 읽어봤었으니까. 중학생 때 그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런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자 읽었던 게 Y의 비극이었다. 당시 소설가에선 3대 추리소설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함께 'Y의 비극'을 손꼽고 있었다. Y의 비극을 고른 건 꽤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Y의 비극은 소설로서의 구조도 아주 훌륭했지만 무엇보다도 반전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범인을 안 순간 나를 감싸던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전까지 선하게 보이던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으니까. 

그런 충격 때문인지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지 않고 있다가, 한참 시간이 흘러 애거서 크리스티로 돌아왔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골랐다. '비뚤어진 집'이라니. 살인 사건이 아마도 집에서 이뤄질 테고, 흥미로운 밀실 사건을 다루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밀실 살인'을 다루고 있지 않다.

내 기대와 정반대로 '완전 개방형 살인'에 가깝다. 소설 중간에 '도둑이 들어서 살인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주장하는 부분이 나올 정도이니까. 

결론 또한 내가 원했던 새로운 트릭은 없었다. Y의 비극에서 읽었던 반전 구조와 판박이였다. 문제는 Y의 비극에서 나왔던 흥미로운 공간구성이 이 책에선 완전히 배제되었다. Y의 비극을 읽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소설 속에 조금씩 엿보이는 우생학적 관점도 맘에 들지 않았다.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라는 것이 정해져 있고, 나쁜 유전자를 받은 사람은 살인자가 되고, 좋은 유전자를 받은 사람은 성공한다는 느낌의 서술도 있었다. 이런 관점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갖고 있던 생각이지 않았나. 우월한 유전자를 보유한 독일인(아리아인)은 세계를 지배해야 하고, 나쁜 유전자를 가진 히피나 유대인은 몰살시켜야 한다고 했던 그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관점이 이 책에 그대로 드러나 있고, 심지어 결론으로 서술되어 있다. 1949년에 쓰인 책에서 이런 생각이라니. 조금은 충격이다. 

2. '비뚤어진 집' 관계도 도식으로 정리해보기 


3. '비뚤어진 집' 3줄 평 
- 소설 'Y의 비극'과 이야기 구조가 유사한 책. 
- 우생학적 관점이 보여서 불편한 책. 
- 추리소설 치고는 장소에 대한 묘사가 적음. 인간관계 묘사가 이야기의 주를 이룸.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