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4. 22. 09:00

저자 : 김민섭
출판사 : (주)미래엔
초판 1쇄 발행 : 2016년 11월 28일 

1. 대리사회 
회사원 중에 이런 생각 안해본 사람 있을까요? '이건 내 일이 아니니까.' 학생 땐 취업해서 회사만 들어가면 정말 충성 다해 일할 거라 생각했었죠. 들어와 보니, 내 일이 없더군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 누군가를 대리해서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런 얘길 합니다. "우리 Sync 맞춰야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정확하지 않을 때마다 내 윗사람의 생각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Sync를 맞추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회의를 합니다. 생각을 맞추고, 맞추고, 또 맞춥니다. 회사의 정점에서는 결국 회사의 오너가 서 있습니다. 그를 둘러 싼 수 천, 수 만 명의 직장인들은 그의 생각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죠. 

깨어 있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돈을 가진 자의 생각을 대리하는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또한 권력을 가진 자의 생각을 대리하는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회사가 그러하고, 대학이 그러하며, 우리네 길거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 김민섭 씨는 참 특이한 사람입니다. 대학에서만 8년을 공부했던 사람인데, 시간강사 일론 가족 부양이 어려워서, 맥도날드에서 일했다고 하네요. 몸으로 뛰는 노동을 하며 자신이 있던 대학을 돌아 보게 되었고, 결국 대학을 그만뒀다고 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바라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가 썼던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그랬습니다. 작가 자신이 머물던 대학이라는 공간, 맥도날드라는 공간을 상충시켜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의미였는지 고민하죠.

대리사회는 대학을 그만 둔 작가가 카카오 대리기사 일을 하며 써 나간 경험담집입니다. 대리기사 일을 하며 마주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잡다한 썰로 가득 차 있죠. 동네 친한 형과 함께 소주 한 잔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전해 듣는 느낌입니다. 

물론 책을 읽다보면 '이 작가 좀 이기적이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카카오 드라이버와 기존 대리업체 기사들 과의 대립관계를 다룬 부분은 철저히 카카오 위주로 주장이 이뤄지죠. 실제 대리업체들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들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존 대리기사들이 어떤 입장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그들을 갑과 마주하려는 을의 앞을 막아서는 또 다른 을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삽화에서는 그들을 무슨 뿔 달린 도깨비 마냥 묘사했는데 이 부분은 굉장히 읽기 불편하더군요. 

대리기사를 하면서 만났던 좋은 손님들과 불편한 손님들도 철저히 대리기사의 입장에서 그려집니다. 팁 하나 더 주고, 선물 더 주고, 편한 말 해주는 그런 손님이 좋은 손님입니다. 대리기사를 불편하게 하는 손님들, 방구 끼는 손님들, 팁 안주는 손님들, 너무 먼 위치에 사는 손님들은 불편한 손님들이죠. 그 모든 손님들도 각자가 사정이 있었을 테고, 또 어디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을 것인데 철저히 대리기사 위주로 평가 받고 있죠. 만일 작가의 차를 탔던 손님 중 한 사람이 이 책을 읽었다면 그 또한 큰 모욕감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뭐, 책이란 것이 다 그런 면이 있는 거죠. 다른 사람 입장까지 모두 고려해서 글을 쓴다면 그게 글이 될까요.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맞다.'라고 외치는 황희 정승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걸 다 얘기하겠어요. 애초에 대리기사 세계를 다룬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겠죠. 그런 면에선 이 책은 참 보기드문 책이긴 합니다. 

2. 인상 깊은 문장들
손님이 조수석에 오르는 순간, 택시 기사는 그를 거기에서의 모든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져오는 것이다. 대화뿐만 아니라 라디오, 에어컨, 창문 등, 내부와 외부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통제해 나간다. 자기 방식대로 운전하다가 다른 운전자와 싸움이 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대리기사에게 운전석이란 온전한 타인의 공간이다. 

면접관은 손님이 '갑질'을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와 다른 지원자는 모두 대화로 잘 해결하겠다는 내용의 답을 했다. 그에게 가까운 경찰서로 차를 몰고 가면 어떨까요, 하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갑자기 "우리 사회 참 갑질이 문제야......"라면서 자신의 '갑질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을 예로 들기도 했고, 대리운전에서 일어날 여러 상황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그것이 꽤나 길어서, 나는 자꾸만 병원에 있을 아내와 아이가 떠올랐다. 10분이 넘어가자 '저 선생님, 이게 '갑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삶의 무게는 힘겹지만, 어떻게든 그 누구도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당신도 나도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어서 돌아가 물동이의 무거운 부분을 내가 받치고 싶다. 서로를 삶의 주체로 두는 가운데 글쓰기도 그 무엇도 계속해 나가고 싶다. 

3.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 
1) 당신이 현재 하는 일은 당신이 원해서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를 대신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일 대신하고 있다면, 왜 그런가요? 

4.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같은 저자의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저도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5. 3줄 요약 
- 대학에서 8년간 공부한 학자가 대학을 때려치고, 대리기사 일을 하며 적어나간 경험담 
- 대리기사를 하며, '누군가를 대리하며 살아간다'라는 개념에 대해서 여러 차례 고민한 흔적이 돋보입니다. 
- 작가 위주로 편파적인 부분도 눈에 띄는데, 이런 글에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