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3. 20. 21:00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옮긴이 : 권남희 
출판사 : 비채
초판 1쇄 인쇄 : 2012년 6월 27일 

1. 책에 대한 느낌 
연속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건너 뛴 채로 그의 수필집만 읽다 보니, 이 사람이 좀 실없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는 매년 일본 전역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떠들썩한 사람인데 말이죠. 물론 노벨 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내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것은 좀 위험한 발상인 것 같긴 합니다. 그런 부분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람의 책에서 느꼈던 섬뜩한 외로움을 생각해보면, 이 사람의 수필은 좀 다른 맛이 나곤 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혼자서 위스키를 홀짝이면서 듣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일까요. 

누군가 잡담을 걸 때, 별 시덥잖은 이야깃거리로 훅 들어오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로 말을 걸어주었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시 그 이야기가 원점에서 '짜잔, 끝났습니다.'하고 정리가 되지요. 원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그런 느낌인 것인지, 아니면 이 수필집에서 그런 느낌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 걸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하루키의 수필을 읽는 것이고요. 누군가 무게 잡고 멋진 말을 하려고 하면 일단 거부반응부터 일어납니다. 그런 수필을 최근에 몇 권 읽었는데, 차마 블로그에 올리질 못하겠습니다. 

2. 인상 깊은 문장과 감상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 (중략) "그런데 채소라면 어떤 채소 말이에요?" (중략)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에서 깔끔하게 끝나면 확실히 멋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채소가 시시한 존재가 돼버린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말로 사이다입니다. 이런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하루키가 참 좋습니다. 

보스턴에 살 때 근처 헬스클럽에 다녔는데, 그곳은 어째서인지 흑인 청년 회원이 많아서 어느날 오픈식 샤워룸에서 물을 끼얹다가 문득 주위에 있는 사람 모두가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단련된 체격 좋은 젊은이란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이것도 왠지 긴장되는 일이었다. 무서운 건 아니지만, 이질적인 공간에 잘못 흘러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여러 체형의, 여러 생김생김의, 여러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적당히 느슨하게 사는 세계가 정신건강상 가장 바람직한 것이구나 싶다. 

이런 문구들은 가끔 가다 만나는 저의 인간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비슷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사람들만 잔뜩 모아놓았지요. 친구 한 명이 제게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난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 무리에 있는 게 싫더라고. 나 같은 사람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내가 나쁜 성격이라는 건 아니지." 

올림픽 개최지를 발상지인 아테네로 고정하라는 주장. 매번 개최지를 정하는 데 그렇게 난리법석을 피우고, 몇억 엔이나 되는 돈을 광고 에이전시에 퍼다바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일이다. 뇌물 스캔들도 자주 일어난다. 개최국의 위신을 건 개막식의 화려한 세리머니도 한심하고 성가시다. 그딴 건 필요 없다. 

평창 올림픽 생각 납니다. 이 말을 그대로 묶어서 국회에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 이 말은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한 말이라고. 좀 귀담아 들어주라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이 주장은 그냥 배척 받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것도 오래된 얘긴데, 과거 지하철 긴자 선 차량은 역에 정차하기 직전에 반드시 조명이 뚝 꺼졌다. 그리고 승객은 일 초 정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혔다. 언제부턴가 설비가 개량되어(서일 테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그 어둠이 좋았다. 

지금도 한국 지하철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과 회기역 사이입니다. 그와 비슷한 느낌을 일본에 사는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그 어둠이 좋았다'라는 말은 그 말을 꺼내기 전에는 구체화 된 적 없지만 저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누군가와 나눠보고 싶네요. 

사실 여성에게 인기가 많으면 인생이 여러모로 시끄러워질 테고, 다리가 길어봐야 비행기에서 불편할 뿐이고, 노래를 잘하면 노래방에서 목을 너무 많이 써서 목에 용종이 생길 뿐이고, 섣부른 천재였다가는 재능이 언제 다할까 안절부절못할 테고...... 

이런 문장들을 좋아하는 건 너무 제가 속되서 그런 걸까요? 

3.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 
1) 이 책을 읽어보셨다면 가장 공감가는 이야기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이 포스팅에 소개하지 않은 보물 같은 문구들이 참 많은 책이라 할 수 있는 질문 같습니다.) 

4.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수필집들 

5. 3줄 요약
- 잡담 같은 하루키의 수필집 
- 새삼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공감가는 문장과, 담담한 문체로 얘기해주어서 참 좋다
- 굳이 힐링힐링 외칠 것 없이 이런 수필 자체가 힐링 아닐까요?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