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3. 7. 21:49


저자 : 김연수 
출판사 : 마음산책 
초판 11쇄 발행 : 2004년 5월 1일 

1. 청춘의 문장들 속 문장들. 그리고 그 감상. 
꽃이 떨어질 때마다 술을 마시자면 가을 내내 술을 마셔도 모자랄 일이겠지만, 뭇꿏이 무수히 피어나도 그 꽃 하나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음날 쓸쓸한 가운데 술에서 깨어나면 알게 될 일이다. 

할아버지가 죽은 날 장례식장에서 껄껄대며 웃던 아버지의 친구들을 기억합니다. 그것이 장례식을 맞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설명해주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들은 그날 저녁이 되어 술에서 깨어도 우리 할아버지를 기억이나 할까요? 꽃이 떨어지는 곳에 어디 호상 따위가 발길을 떼는지 모르겠습니다. 

“호산외사”란 책에서 한 귀인이 최북에게 그림을 요구했는데 최북이 이를 거절하자 그 귀인이 최북을 위협했다고 전한다. 이에 최북은 분노해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라고 말하며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고 한다. 대단한 기세, 대단한 오기가 아닐 수 없다. 

어릴 적 '쌩쌩이'라는 장난감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요요인데, 크게 힘을 줘서 요요를 내리면 요요가 다시 올라오지 않고, '쌩쌩' 소리를 내며 혼자 돌다가 3초 뒤에 다시 위로 올라오는 신기한 요요였습니다. 동네 친구가 그 요요를 보고 신기해해서 자기도 한 번 돌려보고 싶다고 제게 간청했습니다. 전 적어도 2번은 요청할 것이라 생각하고 일단 한 번 튕겼습니다. 그런 제 속셈을 아는 것인지 그 친구는 "드럽고 치사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가버렸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네가 더 드럽고 치사하다! 간청 한 번 더 하는게 그렇게 어렵냐? 그래가지고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하튼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요요를 바닥에 던져 부셔버렸습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시간이란 건 참 뜰채로 적당한 순간들을 걸러서 제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걸 기억하게 합니다.  

입영통지서를 받는 순간, (중략) 내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그런 인간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의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처지가 된 인간들이 열중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뿐이다. 바로 음주와 연애와 여행이다. 

김연수의 이 글은 참 읽는 맛이 있었습니다. 군대 가기 전 저의 삶은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순간인만큼, 그 누구나들이 참 불쌍해지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G.K.체스터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라질 떄를 상상할 수 있다면. 

보지 않으면 보고 싶었고 만나면 즐거웠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거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뭔가가 결여돼 있는 듯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괴로워지는 어떤 것,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감미로워지는 어떤 것, 대일밴드의 얇은 천에 피가 배어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케이트를 지칠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영화 컨택트를 보고, '왜 저 사람은 고통을 알면서도 고통을 선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내가 영화에서 보고 느낀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까? 난 바보인가.' 김연수 작가의 이 문장을 보면서 위안받았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해주었구나. 좋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책과 관련된 토론 주제
1) 자신의 삶에서 부모님을 제외하고, 고향의 그리움 혹은 고향을 넘어선 다른 어딘가를 향한 그리움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2) (만일 남자라면) 군대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까? 

3) 자취를 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 시절 살았던 지역에 대해서 묘사해봅시다. 

3.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김연수 작가가 어딘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았다는 평도 있는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되긴 합니다. 많이 즐겨 읽기는 했나 봅니다.) 
- 영화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영화 : 컨택트 (김연수 작가가 G.K.체스터튼의 말을 언급하며 쓴 수필은 이 영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만일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4. 3줄 요약
- 김연수 작가의 청춘, 학창시절, 군대시절을 담아 적은 수필입니다. 
- 김연수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봤는데, 현학적이라거나 어렵다는 평과 달리 글이 참 유려하고 자기해학적인 맛이 있습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참 허한 마음이 들어 좋았습니다. 외로워져서 좋았습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