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14. 23:23
시선
1달 전 친구 A, B와 함께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 우린 점심시간에 한 장소에서 만났다.

오랜만이었다. 

작년 이맘 때 우리 셋은 종종 같이 어울렸다. 그래서 함께 밥 먹는 약속 잡는 게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그게 참 달라졌다. 3개월 쯤 전에 함께 있던 카톡방에서 친구 A가 밥 먹자고 요청했을 때 친구 B는 단호히 거절했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거절이 3번 쯤 거절 되었는데, 이걸 문제로 친구 A와 난 술자리에서 따로 얘기거리로 삼았다.

'친구 B가 우리와 함께 밥 먹는 게 싫은가봐.' 

추석이 되기 전 어느 날, 난 우리가 함께 있는 카톡방에 다시 밥을 먹기로 제안했다. 어차피 거절당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단 번에 약속이 잡혔다. 

오전 11시 반, 우린 함께 약속했던 문 앞에서 만났다. 친구 둘이 만나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마치 어제 봤던 사람들처럼 서로를 향해 농담을 날렸다. 애초에 난 친구들을 향해 욕하는 과정에서 친근감과 신뢰를 과시하는 타입이라 거침없이 얘기했다. 친구 A, B는 역시 내가 그럴 녀석이라는 걸 알듯이 서로를 욕하면서 웃어댔다. 

우리는 간단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근처 공원을 걸어다녔다. 한강은 아닌데, 축소판 한강공원 같은 곳이었다. 시내를 양 옆으로 풀숲과 잔디밭이 있는 산책로가 있는 곳.

나는 친구 A가 몇 달 전에 여자친구와 싸워서 힘든 상황이란 걸 기억하고, 요즘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잘 해결되었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 잘 해결되었냐고 물었는데, 여자친구가 친구A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형태로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나와 친구B는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게 무슨 정리된 거냐. 미봉책 아니겠냐. 친구A는 우리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어차피 나와 친구B가 친구A의 여자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그건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제 점심, 난 친구 A와 따로 만나 점심을 먹으며 그 날을 복기했다. 난 친구 A에게 1달 전 이후로 다시 친구 B를 본 적 있냐고 물었다. 친구 A는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 A는 이렇게 말했다. 

'그 날 참 불편했다. 그리고 또 그렇지 않았냐? 너도 굉장히 불편해 하던 걸. 뭔 농담을 그렇게 거칠게 하는 건지. 그리고 뭔 그딴 얘길 꺼내는 건지.' 

이상하다 싶었다. 내가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는 걸까? 난 아무 느낌도 못 받았고, 심지어 친구 B와 따로 얘기했을 때도 잘 지냈는데 친구 A가 얘기하는 건 미묘하게 달랐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했는데 보고 있던 풍경은 너무 달랐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어떤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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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시, 에세이2017. 5. 13. 23:54

저자 : 폴 칼라니티 / 옮긴이 : 이종인 
출판사 : 흐름출판
초판 1쇄 발행 : 2016년 8월 19일 

1. 죽음 속으로 
저자 폴 칼라니티는 이제 고인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유망한 신경외과의로 성장했다. 힘겨운 의과대학원 생활과 레지던트 생활을 끝마쳤고 수료를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폐암을 선고받았다.  

저자는 비록 의사이지만, 자신의 인생계획에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아갈 생각이었다고 했다. 의과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영문학을 공부하던 독서광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의사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한 심도있는 고민과 생각이 담겨있다. 

죽음을 앞두고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엔 어떠한 신파도 담겨 있지 않다. 눈물나는 감동 드라마를 예상했는데, 오히려 덤덤하면서도 인간의 실존에 대해 탐구한 의사의 기록이라 느껴진다. 

의사로서의 실수 혹은 의사이기 때문에 더 깊게 다가오는 관점들이 인상깊게 느껴진다. 
이런 고민이 깊게 느껴지는 부분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나는 실수도 했다. 한 환자를 수술실로 급히 데려갔지만 그의 뇌를 완전히 구해내지는 못했다. 그 결과 환자의 심장은 뛰었지만, 그는 이제 말을 하지 못하고 튜브를 통해 음식을 먹었다. 그가 결코 원하지 않았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환자의 사망보다 더 지독한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따. 무의식 상태로 신진대사를 하는 이런 불완전한 생존 상태는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 되어 대개는 시설로 보내진다. 감정적인 정리를 아직 하지 못한 가족이 환자를 찾아오는 발길은 점점 뜸해지고 환자는 결국 치명적인 욕창이나 폐렴에 걸리고 만다. 환자가 언젠가 눈을 뜨지 않겠냐며 연명치료를 고집하는 가족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기에, 아니 그렇게 될 수 없기에 신경외과의는 선고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며칠 뒤, 나는 의과 대학원 동창인 로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심정지를 일으켰다가 회생했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나는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교통사고로 죽었구나'하고 그냥 넘겨버리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에 지나가버렸다. 레지던트인 내게 그런 소식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그 안에 있는 모든 음울한 이미지들을 연상시켰다. 들것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 치료실 바닥에 흐르는 피, 목에 밀어넣은 관,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장면. 내 두 손이 보인다. 내 손은 로리의 머리카락을 밀고 있다. 메스가 그녀의 두피를 절개하고, 요란한 드릴 소리와 함께 뼈가 타는 냄새가 난다. 뼛가루가 수술대 위에서 흩날리고, 내가 그녀의 두개골을 열어젖힐 때 우지끈 소리가 난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반쯤 면도되어 있고, 두부는 흉하게 변형되어 있다. 로리는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친구와 가족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다. 가슴에는 관이 꽃혀 있고, 다리는 견인 치료를 받고...

2. '숨결이 바람 될 때' 3줄 평 
- 죽음을 마주하는 의사가 인문학점 관점을 가진다면 어떤 책을 쓰게 될 것인가? 
- 심지어 그 자신이 죽음을 목도한 상황이라면? 
- 문장은 아름답고, 묘사는 이성적이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외국소설2017. 5. 12. 23:08

저자 : 길리언 플린 / 옮긴이 : 김희숙 
출판사 : (주)도서출판 푸른숲
초판 1쇄 발행 : 2015년 11월 30일

1. 누군가를 함부로 조종하지 마라. 
대학 시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미술 동아리였다. 내 전공은 언어학이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그 동아리에 가입했다. 미술 동아리라고 하면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 동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동아리 회원은 단지 한 학기에 한 차례 열리는 미술 전시회를 위한 그림만 그리면 충분했다. 아, 그리고 그 전시회를 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한 차례 연습 그림을 그려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한 학기에 그리는 그림은 단 2점이면 충분했다. 그 외의 시간은 자유였다. 

우리는 공강시간이나 점심, 저녁 시간에 자주 동방(동아리 방)에 들렀다. 우린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사실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게 더 편했다. 선배, 후배들 사이엔 특별히 규율 같은 게 없어서 다들 편하게 지냈다. 

동아리엔 카톡방도 따로 있었다. 동아리 회원이 모두가 함께 있는 카톡방이었다. 동아리 회원은 30명이 넘었는데, 인원이 많다보니 끼리끼리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선배방, 후배방, 신입방처럼 나이나 학년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었고, 같이 어울리는 사람끼리 카톡방을 만들기도 했었다. 

나 역시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땐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끼리만 카톡방을 만들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엔 카카오톡을 막 처음 써본 시기였다 보니, 이런 게 별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카톡방만 해도 아마 5개가 넘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게 참 웃기는 일이긴 하다. 

그땐 참 배려라는 게 없었다. 한 카톡방에서 했던 얘기를 다른 카톡방에서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어떤 카톡방에 끼지 않은 경우엔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끼리 우리만의 카톡방을 만들었는데, 그걸 주도한 사람이 나였다. 우린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함께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 때문에 동아리 모임 같으면서도 그 술자리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난 문제를 깨달았다. 그래서 카톡방을 지웠다. 

어떤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주도한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았다. 내가 분위기 메이커가 된 거 같은 기분에 혼자 도취하여 있었던 거 같다. 그건 참 한심한 일이었다.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이처럼 누군가를 '조종'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스스로 세상을 조종하고, 사람들을 갖고 논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런 착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주인공은 과연 깨닫기는 한 것일까? 

'난 정말 똑똑해. 난 남들보다 우월해'라는 말을 외치는 부끄러운 내 자신에게, 다시금 이 책을 읽게끔 하고 싶다. 

2. '나는 언제나 옳다' 3줄 평 
- 짧지만 강렬하고, 재미있다. 
- '똑똑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
- 겸손함을 가르치는 책.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