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예술2017. 5. 23. 23:42

저자 : 김선현
출판사 :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발행 : 2017년 3월 29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4월 28일 

1. 그림을 보는 일
대학교 땐 그림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2달 정도 잠깐 미대를 가려고 미술학원에 다녀봤던 경험이 있어서 어설프게 그림 그리는 흉내는 낼 줄 아는 편이었다. 물론 전문가처럼 배운 건 아니었다. 제대로 공부한 친구가 그린 그림과 내 그림을 비교하면, 내 그림이 참 엉성하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몇 년 전에 그렸던 작은 유화 그림) 


그림 동아리를 다닌다고 하면 '그림 좀 볼 줄 알겠네?' 라던가, '어떤 화가를 좋아해?'라는 말을 듣곤 했다. 본의 아니게 미술 전시회를 찾아가곤 했다. 마침 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멀지 않은 거리라 자주 걸어 다녔다. 이름 있는 작가의 전시회는 보통 15,000원에서 20,000원 정도였다. 우리 교육의 폐해 때문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영향력 때문인지 몰라도 유명한 작가들은 열에 아홉이 유럽 작가였다. 그래서 한국까지 공수되는 미술품이란 건 유명한 작가의 가장 저렴하고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구글에서 검색하면 해당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고화질로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전시회에 가야 할까, 란 질문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으리란 기대심을 품고 전시회에 다니곤 했다. 물론, 그런 걸 발견한 경험은 없었다. 

미학에 대해서 정리해주는 책을 많이는 아니어도 몇 권은 읽어보았다. 가장 유명한 책은 진중권 교수가 쓴 '미학 오디세이' 3부작이겠지. 대학도 가지 않았던 내 군대 선임도 자기 관물대에 꽂아놓고 읽었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면 별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아, 르네 마그리트, 피라네시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다.'란 마음밖에 안남지만. 

올해 2월엔 오종우 교수가 쓴 '예술 수업'도 읽어보았다. 여기에 더해서 '아트인문학 여행'이란 르네상스 미술과 역사를 다룬 책도 함께 읽어보았다. 이런 책들은 미술을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역사와 엮어서 어떤 의미체계를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건 아무래도 지적 충만감을 더해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림의 곁'은 이런 의미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저자인 김선현 교수가 미술 치료 전문가이다 보니, 책이 집중한 부분은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였고, 어떤 그림을 그렸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고드는 것에 있지 않다. 그저 마음을 놓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 이 그림 속에 있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 여자는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그걸 보는 난 무얼 생각할까. 단편적으로 나 자신의 심상을 바라볼 뿐이다. 

고등학교 땐 멍하니 있는 걸 참 잘했던 거 같은데, 요즘엔 항상 뭔가 하고 있길 바라는 걸 보면 나도 참 이런 책 읽는 것도 어려워진 거 같다. 이 책은 좀 넋 놓고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책 같은데. 

2. '그림의 곁' 3줄 평 
- 이 화가가 이런 그림도 그렸구나 가볍게 소개하는 책 
- 그림을 바라보면서 따로 어떤 지식을 익히기보단 가볍게 명상하는 기분으로 보는 책 
- 넋 놓고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책 


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5. 22. 23:32
실내 슬리퍼
미생이란 만화를 봤다. 그 전까진 로퍼라던가 구두라던가 운동화를 신고 회사에 출근했다. 셋 중 하나를 신고 출근하는 건 기본적인 예의였다. 그리고 그건 일상이었다. 미생이란 만화를 본 뒤론 내가 회사에서 출근할 때 신는 신발과 회사에서 신고 있을 신발을 구분해서 관심을 가졌다. 내 뒷자리에 앉아 있는 차장님이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부장님이 회사에서만 신는 편한 구두를 즐겨 신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에서만 신는 슬리퍼나 구두는 이점이 있다. 평소에 바깥에서 신는 신발들을 망가트리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이곳 저곳 이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 출근한 뒤로 자신이 회사에 출근했다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

미생이란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이점은 그것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였다. 사실 슬리퍼라는 건 평소에 신고 다닐 때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품고 있지 않다. 회사 내에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예의를 충분히 차리지 않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임원과 함께 맞대면 하는 곳에 간다거나 중요한 자리로 이동할 때는 슬리퍼를 벗고 원래 신고 왔던 신발을 다시 신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입사한 지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회의실에서 마주쳤던 알고 지내던 대리님이 '이야, XX씨 참 자유롭고 좋네.'라는 멘트를 날렸을 때 어딘가 한 구석에서 서늘해졌던 기분은 아마 이런 기본 전제에서 다가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종류의 기분들이 다른 회사에서도 모두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다녀본 회사라고 하는 건 아주 한정적인 몇 개 회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에 있는 모든 회사들이 비슷한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은 또 없겠지. 

여튼 이런 글을 쓰는 건 지금 내가 회사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블로그 글을 쓰고자 남아 있는 탓이겠고, 그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장실에 잠시 들를 때마다 이 슬리퍼 때문에 묘한 느낌을 받는 건 내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슬리퍼가 너무 큰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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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잡문/기타 잡문2017. 5. 21. 23:33
편의점 커피
난 매일 아침 편의점에 들른다. 대학교 시절엔 700원짜리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직장인이 되면 이런 음식 따윈 다신 먹을 필요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을 배신하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편의점을 들락날락한다. 삼각김밥이 꺼려지는 이유는 뉴스에서 삼각김밥 안에 들어있는 물질들이 사람 몸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뉴스 기사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 가격이 700원에서 1000원 혹은 1200원까지 뛰어버린 것에 달려있다. 물가는 올랐고, 그에 맞춰 내가 1달 동안 쓸 수 있는 돈의 값도 뛰어올랐다. 돈을 모으는데 들어가는 돈, 한 달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사실 대학생 때 낭비했던 것만큼 직장인 때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대학교 때 썼던 용돈이 직장인이 되어서도 가장 적절한 용돈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통장에 찍히는 돈의 액수는 달라도, 그 돈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편의점은 굉장히 일상이 되었다. 내가 처음 직장인이 되었을 때 편의점을 운영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나이를 먹어서 돈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편의점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는구나. 직장인이 조금씩 자신만의 계급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계속 생활공간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을 때면 항상 음료를 고민하는 편이다. 내가 한창 대학을 다닐 땐 삼각김밥이 잘 팔리지 않은 탓인지 어떤 탓인진 몰라도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며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곤 했다. 그즈음엔 삼각김밥의 가격이 급속도로 올라갈 시점이었다. 음료를 이용해서라도 나 같은 호구의 마음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엔 음료를 내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 단지 삼각김밥에 달라붙어 있는 편의점에서 가장 인기 없는 음료를 먹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이벤트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자유롭게 커피를 고르곤 한다. 커피를 고를 때 선택지는 크게 3가지가 아닌가 싶다. 캔커피, 커피우유, 플라스틱 통에 담긴 커피.

여기서 캔커피는 가장 맛이 떨어진다. 알루미늄 캔(알루미늄이 맞나?)에 들어 있어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금속 맛이 난다. 그 맛이 꺼림칙해서 피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이런 커피를 고를 땐 괜히 커피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거나,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선택을 한다. 물론 웬만해선 고르지 않는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마셨던 종류인데, 직장인이 되어서 고르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나의 선택 레벨이 올라간 것 같은 헛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마 500원 정도 내 삶의 레벨이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일 것이다. 

자주 마시는 건 커피 우유다. 물론 서울우유에서 나온 포리백은 내 선택지가 아니다. 포리백은 편의점에서 마시기 상당히 민망하다. 먹기 힘들다. 그래서 선택지에선 제외되어 있다. 매일유업에서 나온 우유속~ 시리즈가 가장 많이 마시는 시리즈이긴 한데, 사실 이 시리즈는 지겨울 정도로 마셔왔다. 지겹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어서 편의점에선 가능하면 이 시리즈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놈을 찾아보려고 애쓴 후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내 선택지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편이다. 

돈에 대한 부담도 없고,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허세를 부리고 싶단 생각이 들 땐 플라스틱 통에 든 우유를 마신다. 물론 바보같이 2500원을 넘는 놈은 고르지 않는다. 그런 커피를 마실 바엔 차라리 전문 커피점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지.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무시하고 상품을 내놓는 회사들이 있는데, 지난 10년간 경험한 바로 그런 커피들은 1~2년이 안 가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커피들을 사서 마시는 게 너무 일상화되다 보니 가끔은 이런 커피를 박스로 온라인 주문해서 집에서 마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커피 자체 가격이 너무 싸서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참 사치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기야 편의점도 인건비가 있고, 시설 유지비가 있을 텐데 어떻게 내가 집에서 직접 먹는 것과 같은 값을 받을 수 있을까.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동안 4곳의 편의점이 있는데 그런 서글픈 생각을 하며 출퇴근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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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