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21. 23:33
편의점 커피
난 매일 아침 편의점에 들른다. 대학교 시절엔 700원짜리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직장인이 되면 이런 음식 따윈 다신 먹을 필요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을 배신하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편의점을 들락날락한다. 삼각김밥이 꺼려지는 이유는 뉴스에서 삼각김밥 안에 들어있는 물질들이 사람 몸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뉴스 기사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 가격이 700원에서 1000원 혹은 1200원까지 뛰어버린 것에 달려있다. 물가는 올랐고, 그에 맞춰 내가 1달 동안 쓸 수 있는 돈의 값도 뛰어올랐다. 돈을 모으는데 들어가는 돈, 한 달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사실 대학생 때 낭비했던 것만큼 직장인 때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대학교 때 썼던 용돈이 직장인이 되어서도 가장 적절한 용돈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통장에 찍히는 돈의 액수는 달라도, 그 돈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편의점은 굉장히 일상이 되었다. 내가 처음 직장인이 되었을 때 편의점을 운영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나이를 먹어서 돈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편의점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는구나. 직장인이 조금씩 자신만의 계급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계속 생활공간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을 때면 항상 음료를 고민하는 편이다. 내가 한창 대학을 다닐 땐 삼각김밥이 잘 팔리지 않은 탓인지 어떤 탓인진 몰라도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며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곤 했다. 그즈음엔 삼각김밥의 가격이 급속도로 올라갈 시점이었다. 음료를 이용해서라도 나 같은 호구의 마음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엔 음료를 내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 단지 삼각김밥에 달라붙어 있는 편의점에서 가장 인기 없는 음료를 먹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이벤트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자유롭게 커피를 고르곤 한다. 커피를 고를 때 선택지는 크게 3가지가 아닌가 싶다. 캔커피, 커피우유, 플라스틱 통에 담긴 커피.

여기서 캔커피는 가장 맛이 떨어진다. 알루미늄 캔(알루미늄이 맞나?)에 들어 있어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금속 맛이 난다. 그 맛이 꺼림칙해서 피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이런 커피를 고를 땐 괜히 커피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거나,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선택을 한다. 물론 웬만해선 고르지 않는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마셨던 종류인데, 직장인이 되어서 고르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나의 선택 레벨이 올라간 것 같은 헛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마 500원 정도 내 삶의 레벨이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일 것이다. 

자주 마시는 건 커피 우유다. 물론 서울우유에서 나온 포리백은 내 선택지가 아니다. 포리백은 편의점에서 마시기 상당히 민망하다. 먹기 힘들다. 그래서 선택지에선 제외되어 있다. 매일유업에서 나온 우유속~ 시리즈가 가장 많이 마시는 시리즈이긴 한데, 사실 이 시리즈는 지겨울 정도로 마셔왔다. 지겹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어서 편의점에선 가능하면 이 시리즈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놈을 찾아보려고 애쓴 후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내 선택지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편이다. 

돈에 대한 부담도 없고,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허세를 부리고 싶단 생각이 들 땐 플라스틱 통에 든 우유를 마신다. 물론 바보같이 2500원을 넘는 놈은 고르지 않는다. 그런 커피를 마실 바엔 차라리 전문 커피점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지.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무시하고 상품을 내놓는 회사들이 있는데, 지난 10년간 경험한 바로 그런 커피들은 1~2년이 안 가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커피들을 사서 마시는 게 너무 일상화되다 보니 가끔은 이런 커피를 박스로 온라인 주문해서 집에서 마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커피 자체 가격이 너무 싸서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참 사치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기야 편의점도 인건비가 있고, 시설 유지비가 있을 텐데 어떻게 내가 집에서 직접 먹는 것과 같은 값을 받을 수 있을까.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동안 4곳의 편의점이 있는데 그런 서글픈 생각을 하며 출퇴근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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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