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26. 23:49
나이들어서 성공한 사람들
나이 들어서 성공한 사람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위안감이 든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왜 동료 친구들에 비해서 이 정도밖에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혹은 당장 고생해서 목표한 꿈을 성취하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어서 성취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라고 자기 위안을 날린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나는 박완서를 들었다. 비록 그가 어려운 시절 서울대를 졸업하고 문학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긴 했지만, 아주 늦은 나이에 글을 써서 꽃을 피웠다. 내 나이 시절 그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며, 가난과 전후의 상처에 시달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조선 시대, 정도전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전은 나이 40이 되기 전까지 유배 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녔다. 당시 수명으론 한참 뒤늦게 이성계를 만나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옆자리에 앉아 계신 과장님이나 부장님이 '직장인으로서 가장 큰 역량을 발휘하는 건 사실 40~50세가 되어서라고 하더군.'이라고 어떤 기사에서 읽은 연구결과를 알려주었다. 과연 그 연구 결과가 어떤 전제 조건을 따라서 치러진 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얘길 들을 때, 내심 난 여전히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사례를 찾는 건 마침 내가 그런 사례 속 사람들 나이를 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엔 대학교 때 세상에 이름을 날린 사람을 비교하며, 고등학교 때 영재로 떠올랐던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특출나게 잘난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재능을 꽃피운 터라 나중에 나이가 들면 오히려 더 문제가 될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했다. 

이런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걸 글로 쓴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내 나이 50에도 난 청춘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내 나이 50에도 대기만성을 부르짖으며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을 것이다. 사실 죽기 전까진 모든 게 다 희망이긴 하지. 혹은 죽은 뒤에도 이름을 드높이며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간혹 존재한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람 속에서 기억에 남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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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
독서/미분류2017. 5. 25. 23:37

저자 : 유시민
출판사 : (주)도서출판 아름다운사람들
초판 1쇄 발행 : 2015년 4월 10일 

1. 책을 읽으며, 독서 블로그를 생각했다.  
나처럼 독서 블로그를 운영하면 좋은 점이 4가지가 있다. 사실 일석이조만 해도 이득이라 하지만, 블로그만 운영해도 4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으니 어찌 블로그하는 걸 마다할 수 있을까.

첫째, 매일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유시민도 책을 많이 읽는 게 가장 우선이라고 이야기했다. 책을 많이 읽으려면 일단 내적동기가 필요한데, 사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다 보면 이런 내적 동기가 사그라들 때가 참 많다. 블로그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올리려면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이를 통해 독서가 생활화된다. 

둘째,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블로그로 계속 생존하려면 글은 매일 최소 1개씩 올리는 편이 좋다. 이 때문에 책을 읽는 족족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긴다. 그것이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어떻게든 나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셋째, 자꾸 글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읽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글을 쓰고자 한다. 그렇다고 아무 글이 싸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저녁만 되면 오늘은 어떤 글을 써야 하지 머리를 붙잡고 고민한다. 덕분에 평소 하지 않던 생각도 다시금 할 수 있으니 이것도 참 좋은 일이다. 

넷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블로그 이웃에 관한 얘기다. 물론 난 이웃관리가 소홀한 편이라 피드백이 상당히 적은 편이지만. 

(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내 블로그 포스팅을 1번부터 100번까지 나열하면, 이전에 썼던 글일수록 정말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민망한 글이 참 많다. 사실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손님은 많아 봐야 100명 남짓한데, 그게 참 다행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는다면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아직 난 멀었다. 10년은 더 글을 써도 참 멀었다.) 

2. 다독과 다작의 중요성 
나는 내 아이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독서'하고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다른 어떤 교육보다도 가장 중요한 2가지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독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일부 있다. 원래 교육의 제 1 원칙은 부모의 본보기라고 하지 않는가. 부모란 사람이 책도 안 읽고, 글도 쓰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그런 행위를 강요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일까.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다 보면 이런 내 생각에 강한 근거들을 마련해준다. 왜 독서와 글쓰기가 중요한지, 왜 그것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지 깔끔한 언어로 정리되어 있다. 

3.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3줄 평 
- 글쓰기 자체를 목표로 새로운 걸 배울 점은 별로 없다. 뻔한 얘길 참 재밌고 유익하게 써놨다. 
-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는 글이라기보단, 글쓰기의 '도(道)'를 가르치는 글 같다. 
- 이래저래 봐도 참, 유시민은 글을 잘 쓴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미분류2017. 5. 24. 23:36

저자 : 한종수, 강희용
출판사 : 미지북스
초판 1쇄 발행 : 2016년 5월 10일 

1. 서울, 서울, 서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나 역시 아파트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곳은 시골이었다. 아파트를 둘러싼 삼면은 논밭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쪽으로는 긴 도로가 지나갔는데, 그 도로 끝에는 갯벌이 있는 항구가 있었다.

아파트 뒤편과 논밭 사이엔 작은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엔 갈대가 좀 자라고 있었다. 

내가 자란 곳은 경기도 평택에서 해안가로 들어간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1982년 윤수일이 발표한 '아파트'에서 묘사한 아파트가 내가 살고 자랐던 시골 마을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따온 거라고 해도 난 충분히 믿었을 거다. 매일 보던 풍경이니까. 

설마 그 '아파트'가 강남 아파트를 의미하는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초등학교 시절 난 서울 친척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강남이라고 하기엔 살짝 자리를 비킨 신림동이었다. 그곳에 가려면 우리 집에서 30분 정도 버스를 기다려서 읍내에 가야 했다. 그리고는 평택시를 거쳐 서울 남부터미널로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갔다. 당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서초 IC에 접어들 즈음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엔 지금보다 매연이 훨씬 심했는데, 서울만 오면 묘하게 가슴이 뛰는 냄새가 나곤 했다. 난 그 냄새를 도시 냄새라고 생각했다. 도시 냄새는 촌뜨기에겐 1년에 한 번 꼭 맡고 싶은 그리운 향취였다. 

내가 어릴 적부터 이미 강남 서초구에 남부터미널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봤던 남부터미널과 그 근처의 모습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그다지 바뀐 건 없다. 이미 건물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고, 세련된 사람들이 거리를 횡보하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훌륭한 냄새를 풍기며 4차선 6차선을 오갔다. 

그래서 난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곳에 그 건물들이 있었고, 왜 하필 서울에서 가장 동남쪽에 위치한 애매한 위치에 터미널이 있었던 건지. 

그렇게 생각한 건물들은 꽤 많다. 예술의 전당이 왜 하필 그런 구석에 이상하게 박혀 있는 것인지, 무역센터라고 하는 코엑스 건물이 항구와 가까운 서쪽이 아니라 동남쪽 삼성역에 위치한 건지, 왜 강남 8학군이 이상하리만치 발달한 건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논술시험을 준비하려고 1달을 대치동에 오고 가며 부모님 돈을 낭비했었다가 한심하게 낙방했던 주제에 대치동이 왜 과외나 학원으로 유명한지에 대해선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남의 탄생'을 읽어보면 어떤 건물들은 그 건물이 위치하게 된 배경이란 게 한 개인의 판단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두환 재임 중에 완공 테이프를 끊어야 했으니 시간이 없었다. 마침 '통 크고 시원한' 것들을 좋아하는 전두환이 헬기를 타고 가다가 우면산 기슭을 보고 '저기 널찍하고 좋겠네'라고 말해서 1983년 7월에 지금의 부지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 '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 최초의 복합 문화 공간인 예술의전당은 서초동 우면산 자락에 들어서게 되었다. 면적은 7만 평이 넘어 충분했다. 

독재자 전두환이 자신의 치업을 남기기 위해 공공건물을 많이 지었던 것도 여러 사례가 나오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서울 시장이었던 구자춘 시장의 일화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서울시 2호선이 결정된 것도 철저히 그가 독단적으로 판단한 것이었다는 것이 이 책에 상술되어 있다. 

구자춘 시장은 2호선이 구로공단과 서울대학교도 지나가야 한다고 보아 자기 생각대로 2호선 노선을 확정 지었다. 사실 대다수 학자들과 서울시 간부들은 서울의 교통망이 역사적으로 방사형으로 형성되어 왔으므로 지하철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3핵 도시론에 미쳐 있는 구자춘 시장에게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물론 이 책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엔 과거 70년대부터 아파트가 개발된 이야기부터 앞으로 2030년까지 서울이 개발될 이야기까지, 가장 기본적인 도시개발 철학을 훑어볼 수 있다. 와, 정말이지 이런 책도 안 읽고 서울 아파트를 샀다면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이런 책은 아무래도 부동산에 관심 클 회사 부장님이나 아버지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2. '강남의 탄생' 3줄 평 
- 이 책을 읽지 않고, 한국 부동산을 알고 있다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 내가 살아가는 장소들 하나 하나가 새롭게 읽혀진다. 
-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건물, 장소들은 우연히 위치한 듯 하나, 사실 필연히 위치한 거였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