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1. 23:42
술을 좋아하냐, 술자리를 좋아하냐?
'넌 술을 좋아하냐, 아니면 술자리를 좋아하냐?'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들었다. 이 질문은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술보단 술자리를 좋아하지.'라고 말한다. 아니, 그럼 술 좋아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는데, 단지 술자리가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단 말이야? 그래서 다시 묻는다. 

'왜 술자리가 좋은데?' 

여기선 대답이 여럿 나뉜다. '술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이 실수하는 걸 관찰하는 게 즐거워서.', '다른 사람의 진심을 들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끼리 떠들고 웃는 걸 보고 있는 게 좋아서.' 

이런 문답을 처음 했던 대학교 1학년 땐 꽤 신선했다. 하지만 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말이 의뭉스럽게 들렸다. 왜 굳이 술자리에서 그런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일까. 술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선 사람을 관찰하지도 못하고, 웃고 떠들지도 못하며, 진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걸까. 낮 시간에 함께 커피를 마실 때는 거짓말을 하다가, 술자리에 가서는 '사실은 말이지...'라고 진심을 꺼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김영란법의 영향인지, 아니면 세대가 바뀌면서인지 한국 사회에서 술을 소비하는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기야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불과 3년 전과 비교하면 술 소비하는 패턴이 확 바뀌었다는 게 느껴진다. 매주 적어도 한 번은 술자리를 가졌던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술 마시는 일이 겨우 생길 만큼 뜸해졌다. 

지금은 회사를 나갔지만, 내게 회사의 술 마시는 문화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나도 술을 좋아해. 친구들과 함께 술마시고 놀기도 하지. 하지만 회사에서 사람들끼리 진솔한 얘기를 나누겠다고 1차고 2차고 3차고 술자리를 갖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회사에 대한 미래를 이야기한다거나, 진실한 무언가를 말하겠다고? 왜 그런 이야기를 커피 마시면서는 할 수 없는데? 점심에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도 진실한 얘기는 할 수 있잖아. 커피 마실 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진실한 이야기인데?" 

요즘엔 혼술하는 사람도 퍽 늘어났다고 한다. 회사에서 돌아와 잠들기 전에 맥주 한 캔을 따서 한 잔 마시며 저녁 외로움을 달래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 나도 그런 통계치를 만드는데 일조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혼술을 마실 땐 정말 아무 말이 없다. 컴퓨터 앞에서 혹은 책 앞에서 가만히 침묵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혹은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조용히 읽고 있는다. 침묵한 채 고요해진다. 회사에서 많은 시간 시끄럽게 떠들면서 술을 마시던 때와는 그 태도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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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