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2. 23:40
필사적인 영어로
평소 만나던 사람들과 함께 술자리를 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자기 친구라고 미국인을 데려왔다. 한국계 미국인이나 일본계 미국인이 아니라, 정말 파란 눈을 갖고 있고 붉은 머리를 갖고 있는 앵글록 색슨 족 출신의 혹은 유대인 출신의 미국인을 데려왔다. 그 광경이 생경하기도 했고, 대학생들끼리 술마실 때 이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끼리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미 얼큰하게 취해서 어느 정도 평소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내 선배는 영어로 무작정 말을 걸었다. 앵글로 색슨계의 그 친구는 논리적으로 판단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필사적으로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 말을 알아듣고 친한 기색을 띄었다.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모두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 역시 그래야 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영어를 잘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영어를 이용한 학문을 전공으로 가진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난 단 한 번도 미국이나 영국 혹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나가본 경험이 없었다. 그곳에서 함께 술마시는 사람 중에서도 단 한 명도 외국에 나가 술 한 잔 마셔본 경험이 없는 한국 토박이들이었다. 그 때로부터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미국에서 그 때를 추억해보니 참 그 때는 모두가 어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때 그 자리에 초대받아 어렵사리 함께했던 그 미국인 친구가 얼마나 당혹스러운 입장이었겠는가. 우린 그저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당당하게 멋진 태도를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친구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던 단 한 명의 개인이었을 뿐이다. 그가 그 전에 어떤 교육을 받아서 그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어떤 태도를 가질 지에 대해선 우리가 함부로 과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뭐, 이미 충분히 그런 행태를 저질렀지만. 

한국인 친구들끼리라도 함께 거하게 취해서 영어로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 가운데서 내가 갖는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가 함부로 생각했다는 것에 괜히 우습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뭐,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내가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 것도 아니겠지만.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