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8. 23:40
정신 없는 곳에 형태가 있을 수 없다.
이번 WWDC2017에서 애플(Apple)은 HomePod이라는 음성인식 스마트스피커를 내놓았다. 

(HomePod 공식 광고영상) 

이미 훨씬 전에 아마존(Amazon)이 음성인식 스피커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아마존 에코(Amazon Echo)를 내놓은 터라, 애플에서도 비슷한 류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

웃기는 건 이번 키노트 영상을 보면 애플이 이 제품에 강조하는 포인트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존 에코라는 업체가 스피커의 본 성능보다는 알렉사(Alexa)라는 음성인식 인공지능 서비스를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애플은 (해당 가격대에서의) 스피커 성능과 내부 구조, 집에서 놓였을 때의 스피커가 어떤 구조로 울리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원래부터 스피커를 만들던 회사처럼. (물론 Siri도 엄청 중요한 포인트지만.) 

(121:25 부터 HomePod에 대한 키노트)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건 HomePod의 디자인이다. 맨 윗부분 상단부를 제외하면 아랫 바닥까지 Mesh Fabric으로 가득 차여진 디자인이 인상깊다. 집안 어디에 두어도 활용할 수 있도록 울림통을 충분히 활용한 형태에 그 외관까지 아름답다. (라는 건 애플덕후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회사에 다니면서 디자인 선정 과정에 끼여들어서 회의에 참가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멋진 제품을 보면 뭔가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 회사에서도 제품에 최선의 디자인을 뽑으려 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답답한 경우도 종종 있다. 부족한 시간과 자원 문제로, 여러 번 실패 과정을 겪지 않고 빨리 타협점을 찾는다. '만일 애플이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진 않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난 애플에서 일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생각이 완전 착각일 수도 있다. 

디자인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좋아하는 책이라 항상 책상 옆에 두며, 읽고 또 읽는 책인 박현택 씨의 '오래된 디자인'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돈을 만들기 위해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것은 가치다. 돈의 가치 말고 삶의 가치 말이다. 가치가 명확해야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디자인)이 완성될 것이다. 돈 역시 문화와 삶의 가치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이자 생활양식의 한 부분이다. 삶을 벗어나서 디자인이나 문화가 홀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5만 원권의 스위스나 네덜란드 지폐의 스타일을 따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세로 구조, 마진의 설정 등등.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그저 그렇다. 스위스나 네덜란드의 디자인이 좋다면 그들의 디자인의 정신을 배워야지 왜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인지? 스타일이 없다는 말은 디자인이 없다는 말이고, 디자인이 없다는 말은 삶의 가치도, 조형정신도, 기능적인 필요성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이런 문구를 읽다보면 제품 디자인의 문제라기보단, 혹은 회사의 문제라기 보단, 나라는 사람 자체가 어떠한 '정신'이 메말라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끄럽다. 


'잡문 > 기타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상 최신 플랫폼을 써야한다.  (0) 2017.06.16
몰입하기  (0) 2017.06.12
관람차에 앉아 야경을 보며  (0) 2017.06.05
필사적인 영어로  (0) 2017.06.02
술을 좋아하냐, 술자리를 좋아하냐?  (0) 2017.06.01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