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5. 31. 23:39
어린시절,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가끔 어떤 사람들이 '어린이 때는 참 순수했지.'라고 얘기하는데, 과연 그 사람이 자신이 어린이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보면 참 귀엽다. 아이들끼리 다투는 모습도 참 별 거 아닌 거로 보이고, 모든 아이들은 그냥 그 자체로 행복해 보인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력이 있었고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 A와 B가 친해진 건 같은 아파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고, 친구 C와 친구 D가 친해진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미술학원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러할 진데, 40~70살 사이의 어른들이 펼치는 정치라고 뭐 그리 다른 게 있을까. 각자가 같은 출신이냐, 같은 대학이냐, 같은 계파냐에 따라 편이 갈리는 건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자연스럽다고 해서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 난 천주교도였다. 신을 믿었다. 성당에서 가르치는 절대 신에 따르면 세상엔 절대 정의가 있었다. 선과 악은 분명히 나뉘었다. 절대 정의를 따르는 사람에겐 복이 있었고, 절대 악을 따르는 사람에겐 벌이 뒤따른다고 배웠다.

한 편으론 이렇게 얘기했다. 하늘나라는 어린이들의 것이다. 그들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른들은 잘못된 시선을 갖지 말고, 항상 어린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찾아라. 

그래서 생각한다. 성경 속 신은 학교에 가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이들은 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한가? 아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인 6살 때부터 아이들은 간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 중엔 눈치가 빠른 애들이 있었다. 힘이 센 아이 옆에 달라 붙어서 교묘하게 자기 몫의 간식과 자기 몫의 주장을 펼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힘이 센 아이는 아이들의 기준에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고, 서열 관계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다. 물론 서열은 단순하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 작년도에 같이 했었던 학급, 성적, 키, 외모에 따라 다양하게 편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질을 해댔다. 

이렇게 묘사하는 내가 그런 관계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던 건 아니다. 나 역시 나와 함께했던 동네 친구들과 패거리를 이루었다. 친구들은 서로가 불리한 점이 있으면, 그 얘기를 들어주면서 편이 되어 주었다. 주먹질에 동참하기도 했고, 험담질에 동참하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이 내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이건 아마 성당에서 배웠던 교리와 내 행동이 괴리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당에선 유토피아를 그려놓고 그 안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는데, 막상 내가 살아야 하는 공간은 전혀 모습이 다른 현실이었으니까. 

내가 나이 80이 되었을 때, 과학계가 특이점을 돌파하지 못해서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아마 난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의 나를 돌이켜 생각하며 이렇게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 때 내가 했던 행동과 생각은 서로 어긋나는 점이 많았어. 그래서 내가 실수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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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