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2. 26. 22:12

저자 : 김영하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발행 : 2013년 7월 25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8월 5일  

1. 인상깊은 부분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_니체"

이렇게 빠른 속력으로 읽혀지는 책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첫 페이지를 든 순간,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뗄 수 없이 달렸다.'라는 흔한 겉표지 뒷면의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 빠르게 읽힙니다. 대사는 짤막하고, 문단도 단순합니다. 플롯도 경쾌하고 명확해 보였습니다. 기대했던 책의 마지막 클라이맥스가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혼돈이 나의 뒷통수를 노려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이런 속도감을 연출할 수 있는 작가였군요.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는 잠이 안 온다.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는 웃는다. 인생도 모르는 작자들이 어디서 약을 팔고 있나. 

본질적으로 죄책감이란 이기적인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그것이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이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려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이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죄책감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감정이라기 보다는 안에서 빠져나가는 감정이고, 내재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를 소모하는 감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내 자신을 축 내는 감정에 가까운 것인데, 이것을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라고 판단해버린다면, 그건 내 안의 약한 부분을 인정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에 가까워서 뇌의 어떤 부분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있는 것이 맞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주인공의 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덮는 순간, 이 대사가 주인공이 아닌 작가의 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감정이 격해질 때, 그리고 분노갈 일어날 때, 이런 감정을 컨트롤 하는 최고의 방법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변에선 스토레스 혹은 분노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잠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악마와 일종의 계약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잠이라는 건.  

2. 책과 관련된 토론 주제
1) 내가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완전히 틀렸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요? 틀린 경우에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2) 주변에 치매에 걸렸던 사람이 있었나요? 자신의 경험을 나눠 봅시다. 

3.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영화 - '살인의 추억'  
책 -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 
책 - 정유정의 '종의 기원' 

4. 3줄 요약
-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좀비 소설. 아니, 좀비가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살인자가 등장하지 않는 살인 소설. 아니, 살인자가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잘 읽히는 소설. 아니, 잘 읽히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Posted by 스케치*
독서/국내소설2017. 2. 25. 11:28

저자 : 조남주 
출판사 : (주)민음사
종이책 초판 발행일 : 2014년 10월 14일
전자책 발행일 : 2016년 11월 29일

1. 책으로 들어가며
제가 즐겨 듣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채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읽어라. ' 

이 책은 정말 불편한 책입니다. 82년생, 한국에 태어난 평범한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삶을 연대기와 같은 형식으로 이어 나갑니다. 그녀가 겪게 되는 여성 불평등,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이 이 책에서 함께 이어져 나옵니다. 이 책이 이야기 하는 방식에서 굴곡점이 없고,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기 때문에 사실 문장을 보는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문장이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책이 이야기 하려고 하는 주제의식과 이 책의 주인공이 처한 너무나도 평범한 현실입니다. 

이 책은 82년생의 여자가 일반적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종류의 여성 불평등에 대해서 적나라한 역사들을 공개합니다. 어린 아이 때 부터, 학창 시절, 대학 시절, 취업의 과정, 결혼의 과정 전반에 걸쳐서 그러한 불평등을 되새김질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사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게 뭐가 있겠냐 라는 생각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사실 그게 맞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매번 다른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여성 불평등은 과거로부터 이어집니다. 90년대 끔찍하리만치 한국을 덮었던 남아선호사상은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아주 평범하면서도, 너무나도 일상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깁니다. 제 할머니도 그런 면에서 남자 손주를 그렇게나 찾아 부르곤 했었죠. 취업할 때는 남자로서 이득보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여자를 보호하자는 말이 항상 있었습니다. 명절이면 어머니들이 올라와서 집안 요리를 만들고, 아버지들은 거실 안방에 누워 TV를 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은퇴하신 저희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를 도와 요리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부조리합니다. 

부조리한 것들은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해체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젠 제 주변에서 오히려 딸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긴 합니다만...) 남아 선호 사상은 완전히 사라지길 바랍니다.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교사나, 간호사, 공무원으로 쏠리는 모습들도 더이상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취업은 공정하며, 육아휴직은 남자와 여자 둘 다 쓸 수 있는 '강제적인' 것이 되길 바라며, 여자들도 사기업에서 승진의 끝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명절 문화는 해체되길 바라고, 남녀 간의 이상한 서열 문화도 없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해체는 '여성이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생각과 함께 사라져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작건 크건 그 노력은 남자와 여자가 동일하게 해야 합니다. 군대 문제에 있어서도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며, 금전적 비용에 있어 돈을 많이 버는 남자가 비용을 댄다라는 것이 없어져야 합니다. (당연히 남녀간 급여 차이는 없어져야 합니다.) 남자는 돈, 여자는 외모라는 생각도 해체되어야 하며, 과거의 할머니들처럼 여성이 여성으로서 다시 똑같은 부조리를 재생산해서도 안됩니다. 

2. 저자 간단 소개
1978년생인 조남주 작가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초등학교 딸아이의 엄마입니다. 딸을 기르는 엄마의 심정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남녀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책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3. 책의 구성
책의 서두는 82년생 주인공인 김지영씨가 일종의 정신적 발작을 일으키면서 시작됩니다. 그 뒤로 이 발작이 일어나게된 과거의 배경을 훑어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지요. 

어린 시절 언니와 김지영씨, 그리고 막둥이 아들 간의 미묘한 관계를 만들어 온 '할머니'라는 존재 역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 뒤로 학창 시절에서의 성폭력, 성희롱이 이어집니다. 

그 뒤로 대학 결정에서 '여자'로서의 결정 과정. 그 뒤로 취업에서의 '여자'로서의 고통. 취업한 이후, 그리고 결혼한 이후의 여성의 삶을 너무나도 평범하게 조망함을 통해 그 안에서 여자가 갖게 되는 고통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4. 인상 깊은 구절 
" 그래도 내가 아들을 넷이나 낳아서 이렇게 아들이 지어 준 뜨신 밥 먹고, 아들이 봐 준 뜨끈한 아랫목에서 자는 거다. 아들이 못해도 넷은 있어야 되는 법이야. " 
뜨신 밥을 짓고, 뜨끈한 아랫목에 요를 표는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이자 김지영 씨의 어머니인 오미숙 씨였지만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 넌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 

5. 책과 관련된 토론 주제
1)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녀가 불평등할까요? 차별, 혹은 역차별 등 자신이 겪은 불평등에 대해서 함께 공유해 봅시다. 

2) 어떻게 남녀 차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6.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영화 : 서프러제트

7. 3줄 요약
- 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 그래서 좋은 책. 
- 한국 사회, 가장 평범한 여성을 조망하는 외침 

-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서 주제의식은 분명하지만, 너무 뻔한 점은 아쉬움. 


Posted by 스케치*

1. 서재라는 로망 


어릴 적부터 제가 가진 30가지 로망 중 하나는, 수 천 권의 종이 책으로 둘러 쌓인 서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사방 중 삼면이 책으로 높이 둘러 쌓여 있고, 나머지 한 면으로는 햇살이 비쳤으면 했죠. 이왕이면 동남향이길 바랐습니다. 제 키보다 높은 유리문을 통해서 햇살이 비치고, 그 햇살이 그림자처럼 끝날락 말락한 위치에 서재의 하이라이트인 멋진 나무 책상이 있길 바랐죠. 


햇살은 서재의 필수조건이긴 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직사광선이라는 게 책에게 좋은 것도 좋은 건 아니잖아요. 오랜 시간 햇빛을 머금은 책들은 머금은 색을 닮아 누렇게 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변해버린 색을 좋아하기도 합니다만, 이런 책에서는 묘한 책냄새가 나기도 하고, 새 책을 넘기는 촉감이 떨어져서 저는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은 이왕이면 방금 화장을 마친 그녀의 피부를 닮은 새하얀 색이 좋았습니다. 


나무 책상 뒤 책장 옆에는 반드시 높이가 어림잡아 내 키의 두 배 이상 될 것 같은 철제 사다리가 하나 있어줘야 제 맛입니다. 이 정도 사다리를 갖춘 서재는 되어야 '야, 이거 완전 소설가의 서재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상해 봅니다. 


제가 누군가를 데리고 그 멋진 공간을 보여주는 것을 말이죠. 요즘도 계속 연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네이버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서재를 소개하는 코너를 진행했습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33평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시점에서 그렇게 멋지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서재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저 정도 서재를 가져줄 정도는 되어야 저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더랬습니다.


하여튼 나도 네이버에서 어떤 기자가 나와서 제 서재를 소개하려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제게 묻는 것이죠. 


" 이 책은 어디서 언제 사셨던 건가요? 어떤 생각으로 구매하셨던 거죠? " 


그리고 전 당황합니다. 


" 저...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데요? " 


사실 책장에 꽂힌 책 중에는 10년, 15년, 20년이 넘은 놈도 있습니다. 한참 전에 어머니가 사셨다가 물려받아서 읽고 책장에 꽂아둔 놈도 있으니, 그런 것은 한참의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것도 있습니다. 


각각의 책들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녀와 실연했을 때 샀던 책도 꽂혀 있고, 대학교에 처음 입학 했을 때 샀던 책들. 운동을 막 시작해보려고 건강 관련된 책들을 잔뜩 사둔 것도 있습니다. 책장 한켠에는 소설들도 잔뜩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영어로 된 책들도 잔뜩 쌓여 있습니다. (어차피 사놓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책들을 언제 사고, 어디서 샀으며, 왜 샀었는지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또 내가 이걸 언제 읽었더라? 다 읽기는 했었던가, 아니면 읽다가 말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책도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모든 책들이 서재에 쌓여있을 것입니다. 서재에는 완벽한 햇살이 비칠 것이고, 어딘지 모르게 다소 외로운 느낌마저 드는 곳이 제 서재가 될 것 같습니다. 


2. 서점의 기억 


어제도 서점에 들렀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서점을 들릅니다. 서점 옆에는 꽃집도 있습니다. 대체 이 꽃집에선 누가 꽃을 사갈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 가게를 지나칩니다. 


서점에 들어가면 사실 책이 보이는 게 아니라, 문구류가 먼저 보입니다. 


한 때는 서점에 비치된 문구류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 한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몰스킨(Moleskin)도 서점에서 산 물건입니다. 제 필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라미(LAMY) 만년필도 서점에서 산 물건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용돈을 모아, 비싼 샤프를 사는 것이 취미 아닌 취미였습니다. 누구나가 하는 것처럼 500원 혹은 1000원짜리 샤프로 필기를 하면 필기의 레벨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비싼 샤프를 사곤 했었죠. 3만원이 넘는 독일제 샤프로 필기를 하면, 왠지 우아한 학생이 된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요즘 들어 서점이 서점 같지가 않고, 만물상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 책상에는 Sony에서 나온 좋은 헤드폰이 있는데, 이놈도 서점에서 지른 것입니다. 지금 제 옆에 있는 핸드폰에 끼워져 있는 아이언맨을 닮은 빨간 색 케이스도 서점에서 산 것입니다. 


서점에 가서 사라는 책은 안 사고, 정작 엉뚱한 물건들만 잔뜩 사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서점에 가면 십중팔구 책을 삽니다. 


책을 살 돈이 없으면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내 책도 아니고, 다른 귀한 분 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책이라 함부러 막 다루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읽습니다. 그러다 짜증이 납니다. 내가 이럴 바에는 내 돈 주고 산다. 


책 사놓고 처음 몇 페이지만 읽은 책도 한 두 권이 아닙니다.  


대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서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몇 번이고 아버지께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사지 못해서 아쉽다고 운을 띄워놨었더랬죠. 사실 대학생이면 돈도 없고, 책에 돈을 쓰기에는 돈 들어갈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긴 합니다. (그렇다고 책을 안 샀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만...)


아버지와 함께 서점에 가서 이 때가 기회다 싶었죠. 이 책, 저 책 다 골라놓고, "아빠 이거 나 다 읽고 싶어!"라고 말했죠. 그게 30만원 어치가 훌쩍 넘었는데, 별 말없이 책을 다 사주신 것이 놀랍긴 합니다. 내가 평소에 책 사고 싶었던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 돈 주고 책 한 권 사는 게 그닥 어렵게 되어버리지 않은 지금도, 그 돈이 적지 않음을 아는 나이기에 그 때를 추억하며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