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3. 3. 20:01

저자 : 김승옥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발행일 : 1995년 12월 12일 (소설 발행년도 : 1964년)
전자책 발행일 : 2013년 4월 17일

1. 무진기행에 관하여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입니다. 무진기행과 무엇보다 많이 비교되는 이 작품이 기찻길에서의 눈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면, 무진기행은 어딘지 모르게 안개로 가득찬 버스길에서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유행가를 부르지 않으려면 거기에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얘기하면 내정간섭이 될까요?" "정말 앞으론 가지 않을 작정이에요.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럼 왜 여태까진 거기에 놀러 다녔습니까?" "심심해서요." 여자는 힘없이 말했다. 심심하다, 그래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일컬어 보잘것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왕왕 듣곤 합니다. 얼마 전에도 친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난 이 회사에 더 있기가 싫어. 우리 팀장님을 봐봐. 나름 회사에서 성공한 사람인데. 저렇게 되긴 싫다."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 테니까 절 서울로 데려가주시겠어요?" "서울에 가고 싶으신가요?" "네." "무진이 싫은가요?" "미칠 것 같아요. 금방 미칠 것 같아요. 서울엔 제 대학 동창들도 많고... 아이, 서울로 가고 싶어 죽겠어요."
(중략)
"그렇지만 내 경험으로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반드시 좋지도 않더군요. 책임, 책임뿐입니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요."

무진기행이 원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었나요? 저도 그 즈음에 무진기행을 처음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오지선다형으로 책의 주제/주인공들의 심경/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를 풀곤 했습니다. 무진기행은 흔해 빠진 교과서 속 글 중 하나였습니다. 주인공들의 심경이 이해된 적도 없었고, 그들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주인공 '윤희중'의 나이가 고작 33살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이었습니다. 박선생과 하선생의 나이는 이보다 더 어립니다. 아마 20대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책이 이해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세무서장으로 만족하고 있을까? 아마 만족하고 있을 게다. 그는 무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니, 나는 다시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잘 아는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어제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처럼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다시금 반복해서 내가 누군가를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이 되면 내가 했던 판단들에 대해서 후회하지만, 이건 고치는 것 자체가 오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주었다. 

나무위키-무진기행 파트를 보면 이 문구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https://namu.wiki/w/%EB%AC%B4%EC%A7%84%EA%B8%B0%ED%96%89) 이동진이 '조바심'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야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문구를 보고 빵 터졌습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책과 관련된 토론 주제
1) 여행을 가서 이성을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함께 공유해봅시다. 

2)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무서장 '조'는 속물적인 인간일까요, 아니면 현실적인 인물일까요? 자신은 '조'에 가까운 사람일까요, 아니면 '박'(선생)에 가까운 사람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주인공 윤희중이 마지막에 편지를 찢어버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일 편지를 찢지 않고 전달했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4) 만일 자신이 하선생(음악선생)이었다면, 무진을 떠났을까요, 아니면 남았을까요? 떠났거나 남았다면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3.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책- 설국 (관련 블로거 포스팅 http://blog.aladin.co.kr/koshka75/6387061)
영화- 매트릭스 (관련 블로거 포스팅 http://blog.naver.com/sonajin11/220354051706)
영화- 만추 (관련 블로거 포스팅 http://blog.naver.com/fish_eye_/220673560773)
만화- 러브히나(러브인러브)

4. 3줄 요약
- 64년도에 나온 글인데 당장 어제 발표한 작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선생이 부르는 유행가의 제목만 "KNOCK KNOCK"으로 바꾸지요. 
- 순천('무진'은 가상의 공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건데 '무진'의 배경이라 보이는 곳)으로 여행가고 싶어지는 글 

- 왠지 여행가면 연인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안생겨요.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