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3. 27. 23:48
중국이 결국 수치를 겪으며 자유 무역을 하게 된 후 사람들은 국제 무역에 대한 건륭제의 시각을 비웃었다. 후진적인 독재자가 국제 무역이 좋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건륭제의 의견은 사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당시 유럽 주류 경제학자들의 시각과 다르지 않았다. 무역에 대한 건륭제의 관점은 절대 우위론이라고 부르는데, 한 나라가 잠재적 무역 대상국보다 모든 것을 더 싸게 생산할 수 있으면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나라가 왜 무역을 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나라도 무역을 해야 한다. 적어도 데이비드 리카도가 내놓은 비교 우위론에 따르면 그렇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느 나라나 다른 나라와의 국제 무역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 18세기 말(적어도 건륭제의 시각에서는) 영국에 비해 모든 것을 싸게 생산할 수 있었던 중구처럼 그 나라가 무역 상대국보다 '모든 것'을 더 싸게 생산할 수 있어도 무역을 통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상대국에 비해 가장 크게 우위에 있는 분야에 특화하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어느 것도 잘 만들지 못하는 나라일지라도 가장 '덜' 못하는 것에 특화하면 무역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 국제 무역은 그것을 하는 모든 나라에 이득이 된다. 
1.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부키(주), 2014

고등학생 때 처음 비교우위론을 들었을 땐 '단순한 이야기네.'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내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취업활동에 간절히 매달리던 나로선 절대우위적 관점에서 취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스펙이 있어야만 했고,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막상 그 과정이 지나가고 입사를 하고 나니, 내가 회사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남들보다 더 좋은 스펙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일을 시킬만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개인의 만남이나 사교도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이 만나서 같이 얘기할 때도 모든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서 절대우위를 누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박식하고 통찰력 뛰어난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혼자 이야기를 해나갈 순 없다. 각자가 모자란 바탕이 있더라도 시간을 투자하여 생각한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말하면서 소통이 이뤄진다. 그걸 바보 취급하거나 무시한다면, 그렇게 한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생각이 부족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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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