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3. 23. 23:50
친구와 함께 이자카야에 갔다. 누구 한 명이 그 술자리를 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둘 다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어서 동등한 입장에서 술자리를 갔던 것이기도 하고, 이미 1차에서 술을 적당히 마셔서 2차에서는 적당히 기분을 내고 싶어하는 상황인지라 안주는 각자의 눈치를 보고 적당히 시키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굴 튀김이 먹고 싶었다. 굴 튀김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이자카야가 기본적으로 가격이 엄청난 곳도 아닌데다가 마침 그 굴 튀김의 가격이라고 해봐야 고작 만 원밖에 안되던걸. 친구와 나는 서로 약간의 눈치를 보면서 1차에서도 이미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 2차에서는 가볍게 얼큰한 음식을 먹으면서 속을 보호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근데 솔직히 내가 불편한 사람과 술을 마시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런 눈치를 보면서 안주를 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 눈치를 보니 굴 튀김을 먹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만 원을 탁자에 탁 하고 소리 내어 꺼내놓으면서, "굴 튀김 시키자. 이건 내가 산다."라고 선언했다. 친구는 내 뜬금없는 행동에 큭큭거렸지만, 어차피 탕 안주도 또 시킬 것인지라 특별한 반대 없이 굴 안주를 시켜서 먹었다. 

그래 놓고나서는 그 굴 튀김을 다 먹지도 못했는데, 사실 뭐 그건 큰 불만은 아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배가 찬 것 이상으로 과다하게 먹으면 부담이 되기도 하고, 꼭 접시를 비워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근데 막상 자리를 파하고 계산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친구가 깔깔 거리며 나한테 돈을 주는 거 아닌가? 이게 왠 돈이지, 했더니만 내가 책상에 놔뒀던 만 원짜리였다. 한창 술자리에 집중해서 얘기하다 보니 내가 만 원짜리를 호기롭게 탁자에 올려놨다는 걸 까먹고 만 것이다. 친구가 "이 녀석 허세 참 재밌네"라고 얘기하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내 행동이 웃기긴 하다. 앞으로 그 친구는 굴 튀김을 시킬 때마다 나의 그 호기로운 행동을 기억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다시 또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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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