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3. 22. 23:45
술을 좋아해서 즐겨마시다 보면 술버릇이라는 놈이 항상 뒤쫓아온다. 술버릇도 각양각색이다. 취해서 잠에 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전 애인에게 전화하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어렸을 때는 술에 취해도 정신을 잃는 게 전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술버릇이 꽤 명확하게 인식되었다. 보통 어른들과 술을 마시거나 회사에서 술을 마실 땐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정신을 잃는 법이 있더라도 취하진 않는다. 애초에 기분좋게 취하지 않으면 깔깔 거리면서 즐거워하기도 힘들고, 평소 숨겨왔던 본심을 드러내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워낙 마시는 속도도 빠른데다가 이야기 하는 것도 즐거워서 적은 술을 마셔도 금새 취기가 오른다. 술버릇이 쉽게 튀어 나온다. 친구들과 마실 때에 한정해서이긴 한데, 내 경우에 술버릇은 욕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 술버릇도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깔깔 거리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기도 하고, 평소에 얌전했던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거칠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친구들도 즐거워했다. 아니, 즐거워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내가 반대 입장이 된 경험을 했다. 상대는 꽤 술을 많이 마셔서 기분이 좋아보였는데,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서 취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자기는 뒷다마 같은 건 하지 않고, 대놓고 얘기하는 쿨한 성격이라는 걸 강조하면서 나에 대한 비난과 함께 나를 갖고 놀리면서 깔깔대는데, 함께 왔던 사람들이 어색한 웃음을 띄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던 것 같다. 

집에 오면서 술자리를 복기해보는데,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기분이 나빴다. 뒷다마를 한다면 차라리 못듣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의 쿨한 성격을 강조한답시고 대놓고 그런 얘길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새삼 내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다. 다 같이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농담이랍시고 넘겨왔었던 나의 욕설과 농담에 대해서 그걸 듣는 당사자는 어떤 기분이었던 것일까. 난 정말로 그 사람의 기분을 충분히 배려했던 것일까. 내가 욕설 한 마디라도 하려고 한다면, 그걸 상쇄할 수 있을 만큼 더 좋은 말을 몇 배 이상으로 그에게 해줬던 것일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기분나쁜 것 이상으로 내 스스로가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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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