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3. 25. 22:44
어렸을 때는 가족들끼리 한 이불을 덮고 잤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중학생 이상이었으면 쉽게 시도하긴 어려웠을 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두고 한 이불에서 자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당시 TV에서도 그런 가정들의 일상이 흔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내가 딱히 가난하다거나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건 그냥 흔한 우리네 일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세대가 변한다고는 하지만, 가장 급격하게 변했던 시점을 1998년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를 두고 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있긴 했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국가적인 움직임이 없었음에도 그 즈음을 두고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만큼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이불 아래에서 잠드는 것이 어색해진 것도 그 때쯤을 분기로 두고 있다. 한창 학교에서도 프라이버시라는 외래어를 전통개념보다도 더 소중한 것인양 교육했었고, 지금은 그런 개념이 소개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 즈음에 가장 인기있던 광고 중 하나가 에이스침대였다. 침대가 과학이라는, 지금와서 들어보면 이게 대체 뭔말인가 싶은 카피 문구는 침대를 갖고 싶던 내 마음을 자극했고, 부모님을 졸라 침대를 사서 내 방에 배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여전히 침대에서 생활하지 않으셨고, 지금까지도 바닥에서 주무시는 걸 고집하시지만, 그 때부터 나는 침대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침대는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가족끼리 잠드는 걸 방해하는 가구가 되었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한 이불에서 잠드는 가족의 모습을 보곤 괜히 옛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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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