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3. 13. 23:18
문득 출근길에 바라본 우리동네가 참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그나마 지하철이 있는 방향이 동쪽인 덕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출근을 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만, 태양을 제외한 나머지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풀 한포기 없다. 나무 하나 없다. 직장인들이 술 마신 후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귀가길이고, 그 다음날 힘없이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출근길이다. 태양이 정면으로 비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그마저도 구름에 가려 있는 날엔 출근길 전체에 푸른 빛이 맴돈다. 이른 아침 문 닫은 술집들의 외로운 표정과 더러운 쓰레기를 한 쪽 구석에 감춰둔 아스팔트가 괜히 짜증난다. 

그 탓에 아침 댓바람부터 스페인에 가고 싶어졌다. 햇살 가득, 온기 가득, 빛나는 미소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풍경을 떠올렸다. 

물론 난 스페인에 가본 적이 없다. 

스페인이 생각보다 별로라고 한다면, 따뜻하면서도 풀잎이 많은 도시에 가고 싶다. 공원도 많고, 도로에 가로수도 많고, 가게 안에 화초도 많고. 삭막한 도시 안에 여기 저기 풀잎을 배치해두면 어딘지 풍요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도시, 그런 나라에 가보고 싶다. 

그럼 누군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 아니, 서울이 뭐 어때서! 너희 동네만 마침 풀잎이 없는 거지, 풀잎 많고 멋진 풍경의 골목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 한다면 그 또한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나도 주말만 되면 안 가본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풀잎이 적은 곳에 가면 맛있는 걸 먹더라도 어딘지 쓸쓸하지만, 풀잎이 많은 곳에 가면 한 주가 만족스럽다. 내 기억 속에 좋은 느낌을 잘 보관해둔 기분이다.

그런 곳에서 매일 출근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삶의 레벨이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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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