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0. 21. 23:56
드래곤 퀘스트 
하루 종일 드래곤퀘스트만 했다. 그것도 최신 시리즈인 11이 아니라, 3를 했다. 출시된 년도만 봐도 이미 1988년이다. 이미 거의 30년 전의 게임이라 재밌겠냐 싶었는데 완전히 잘못 알아봤다. 모바일로 이식된 버전은 1988년도 버전에 비해 그래픽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게임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렇게 그래픽만 살짝 다듬어졌는데도, 이미 다른 데서 만들어지는 게임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말이고, 오후엔 할 일도 없어서 시간 내서 게임을 해봤는데, 이건 놀랄 노자다. 게임의 밸런스라던가, 어떤 부분이 유저를 재밌게 할 수 있는 포인트인지를 정확히 캐치하고 있다. 개발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부분은 쉽게 찾을 수 없고, 철저히 유저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걸 1988년에 해냈다 것이 신기하다. 

어릴 적에 한국에서 만들어졌던 악튜러스란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2D와 3D를 중간 방식으로 합쳐서 만들어진 게임이었는데, 사실 그래픽이 대단한 게임이라기보단 스토리와 게임성이 뛰어나서 참 좋아했었다. 마치 잘 쓰여진 한 편의 판타지 소설처럼 절묘하게 그려진 스토리가 매력적이라, 이런 게임이 한국에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제작사 자체가 망하면서 한국에서는 후속작을 찾기 어려워졌다. 2000년대엔 다 그랬다. 내가 웬만큼 좋아했던 게임들은 다 망했다. 그 뒤로 남아 버린 건 잔혹한 이야기의 서양 게임과 알아먹을 수 없는 일본 게임 뿐이었는데, 한국 게이머로선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오로지 게임이라는 이유만 보면) 나와 같은 나이대로 일본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아마 드래곤 퀘스트 같은 대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일본인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번에 드래곤 퀘스트 3를 하면서 느낀 건데, 정말이지 이 게임이 갖추고 있는 구성의 탄탄함이란 어디 쉽게 다른 곳에 비교할 수 없다. 아마 그런 이유로 이 게임이 지금까지도 일본의 국민 게임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수 백만 장 씩 팔리고 있는 거겠지. 

드래곤 퀘스트란 게임이 영향을 끼친 분야도 결코 적지 않다. 내가 어릴 적에 가장 좋아했던 만화영화 중 하나가 <아벨 탐험대>였는데, 성인이 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일본에서는 인기가 없던 만화였나? 라는 궁금증에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알고 보니, 이 만화영화의 원제목이 <드래곤 퀘스트>인 게 아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유명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고 무척 놀랐다. 이제 와 그 만화를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별 관심도 없는 친구도 많은데 말이다. 드래곤볼이라던가 타이의 대모험 같은 유명한 만화들에 나온 내용도 이 드래곤 퀘스트에서 따온 설정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수많은 만화들이 드래곤볼을 모방하며 그려졌다는 걸 생각하면, 드래곤 퀘스트 라는 게임은 거의 일본 만화와 게임계에선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중요한 게임이 막상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완전히 소외되었다. 하기야 당시 한국은 워낙 불법 게임이 판을 치는 동네이기도 했었고, 이런 종류의 게임이 한국에서 성공할 거라 여기는 사람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또 그건 나 같은 취향의 사람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진작 어렸을 때 이런 게임을 즐겨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고 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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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