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9. 25. 23:44
오리 고기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서 오리 고기를 먹으러 자주 갔었다. 아파트에서 걸어서는 40분, 차를 타고서는 5분 거리가 되는 곳에 오리 고기집이 있었다. 오리 고기집이 있는 위치는 아주 외딴 곳이었다. 시골에 있는 대부분의 고기집들이 그렇듯이 그 집도 꽤 큰 고기집이었는데, 갈 때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일 저녁 7시에 가도 사람들이 많았고, 주말 오후 4시에 가도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난 미닫이 문을 열고 독방으로 들어갔다. 그 거대한 오리 고기집은 모든 곳이 독방이었는다. 물론 단체 손님을 위해서 독방과 독방 사이에 있는 간이벽을 밀면 독방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보통 그 간이벽은 독방을 분리하기 위해 꼼꼼히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고기를 구우며 안락한 기분을 느꼈다. 

아버지는 자주 내게 '좋냐고' 물으셨다. 내가 참 고기 먹는 걸 좋아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보통 외식하자고 어머니가 말할 때엔 언제나 메뉴가 선정되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항상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곤 했다. 나도 참 어린 맘에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고 나면, 단 한 번이라도 그 음식을 제 때 먹은 기억은 없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보라 해서, 돈가스를 먹고 싶다던지, 혹은 고기를 먹고 싶다던지, 혹은 삼계탕이 먹고 싶다던지 말하고 나면, 여간 하면 아버지가 원래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러 가곤 했다. 그 때마다 난 떼를 썼다. 가기 싫다고. 그런 곳에 갈 바엔 날 데리고 가지 말고 두 분이서 먹고 오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악을 써댔고, 어머니는 화를 내시며, '어쩜 그렇게 넌 부모님 기분도 맞춰주지 못하냐. 실망이다.'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부모님 입장에선 그 말이 맞긴 맞다만, 어린 내가 뭘 알겠나. 난 그저 내 기대를 저버리고 항상 내게 뭘 먹겠냐고 기대심만 부풀리는 부모에게 화가 났을 뿐이었다. 

어릴 적 외식의 기억은 맛있는 오리고기의 추억과 항상 악을 써대며 부모님과 차 속에서 싸우던 나의 모습, 그리고 결국엔 "너도 고기가 맛있지 않았냐. 아버지가 결국 맞지 않았냐."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미소로 이뤄져 있다. 그 기억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오른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게 그렇게 싫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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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