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8. 27. 22:15
분노가 없는 자리 
몇 년 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던 '말 잘하는 법'에는 3가지 요소가 있었다. 관심, 지식 그리고 분노다. 어떤 대화 소재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해당 소재에 대한 관심이 필수일테다. 만일 내가 '요리'라는 주제로 말을 하려고 하는데, '요리'에 관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이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관심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다. 내가 먹어 본 다양한 요리에 대한 경험 지식, 내가 만들어 본 요리 레시피 지식, 혹은 요리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리 도구 등등. 지식은 관심을 보충해주는 좋은 양념이다. 

근데 왜 분노가 필요할까? 재밌는 부분이었다. 분노가 정확히 의미하는 게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해당 주제에 대해 분노를 가진 사람이 더 열정적으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분노라고 하면 조금 애매하긴 한데, 아무러도 경제나 정치 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분명히 그런 경향이 심한 것 같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혹은 정책의 변화로 인해서 내가 세금을 더 내게 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을 받게 되어 분노할 때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일까, 말 잘하는 요소에 속한 '분노'라는 건, 순수한 분노에 대한 부분이라기 보다는 다른 말로 말해 '열정'이라는 말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분노를 이용해서 열정을 살리는 게 아니라, 분노에 사로잡힌다면 문제가 된다.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을 두고 말 잘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상대를 향해 핏대를 세우고, 상대의 말도 무시하며, 나만의 논리가 맞다고 내세우며 상대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태도를 볼 때, 아무리 화자의 말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화자 역시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분노라는 건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요리를 하든,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글을 쓰든, 그 모든 일이 다 관심이나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와 함께 '분노' 역시 필요하다. 내 스스로 조절 가능한 수준에서의 분노가 있으면 어떤 일이든 속도가 붙는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신경쓰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오히려 주변의 방해를 물리치고 당당할 수 있다. 

물론 쿨하지 않다. '쿨하다'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분노따위는 잊어버리고 난 그저 세상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욜로족의 느낌이 난다. 어떤 일에 집착해서 분노하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찌질하다고 생각한다. 쿨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 왠지 멋지고 세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속으로는 왠지 텅 비어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살면서 허망하다고 생각되는 것 중심에 '쿨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허망하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하면 명확히 얘기하기 힘들지만,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분노해야 할 곳에 분노하지 못하고, 쿨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런 게 허망한 것 같다. 


'잡문 > 기타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견을 말하긴 어렵다  (0) 2017.08.29
그곳엔 맥락이 있다  (0) 2017.08.28
1년 전의 생각  (0) 2017.08.25
왜 회사에 들어가면 다들 불행해질까  (0) 2017.08.23
복원 불가능  (0) 2017.08.20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