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8. 23. 23:48
왜 회사에 들어가면 다들 불행해질까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민주 공화국이다. 여기서 '민주'라는 말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말하고, '공화국'이라는 말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혹은 그들이 대리한 사람에 의해서 권력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나머지 한 가지 '자유주의'란 무엇일까.

초등학생 때 난 '자유'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 혹은 부모님이 '자유'라는 말을 쓰는 걸 본 적이 있긴 하나, 그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체감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내 경우엔 푸른 잔디 동산 위에 올라가 손을 번쩍 들고, '난 자유인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건 분명 미디어의 영향이다. 이미 어린이의 과정을 벗어난 상태에서 '텔레토비'의 이미지를 봤던 것, 그리고 TV 광고 어딘가에서 '나는 자유인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봤던 것이 섞인 것 같다. 꽤나 괴상한 이미지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에서 유관순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민족주의를 부르짖을 수도 있고, 혹은 답답한 학교를 탈출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사실 자유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검색하면, 보통 빈 체제라던가, 프랑스 혁명, 영국 혁명 등이 역사적으로 서술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유라는 개념은 엄밀히 말해서 참정권의 문제이다. 정치적인 자유와 그 안에서 엮이게 되는 평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사실 자유주의의 개념이 탄생한 것은 이런 역사적인 현상에서 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의식 체계가 변화하게 된 것이 더 큰 것이 아닐까.

사실 복종의 상황을 인식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계급이라던가 복종이라던가 하는 의식은 교육적으로 배우거나 깨치지 않으면 지독히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대한제국 시절 노예제가 이미 사라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일제 시대도 끝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옛 주인 옆에서 그들을 모시는 노예들에게서 이런 인간의 습성을 발견할 수 있다. 노예문서라던가 어떤 물질적인 예속이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의 정신에 뿌리박힌 복종의 형태는 끝나지 않고 살아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종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보이다. 16세기 라 보에시가 자신의 저서 '자발적 복종'에서 프랑스 왕정에서 계급제를 냉철히 꿰뚫고 이를 문제인식으로 느낀 건 이런 면에서 탁월한 것이었다. 

이런 걸 인식하고 나면, 그 위에 문제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들을 쌓아 나가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당대의 철학자들이 했었던 작업이었다. 민주주의의 개념이라던가, 자유주의의 개념이 여기서 나왔다. 의회제가 자리잡고, 추후 대통령제가 자리잡은 것도 이런 문제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개념은 단순히 정치 국가적인 측면에서만 보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사실 자유라는 부분은 모든 측면에서 모두 함께 통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양측이 모두 자유로운 존재라고 한다면 이는 페미니즘이 된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서 이 둘이 모두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여기서는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사회주의적인 개념이 뒤따라 와야 한다. 모든 인종이 자유로운 위치에 서게 되려면 인종차별주의를 타파해야 하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양측이 모두 자유로운 상황에 놓이고자 한다면 '어린이'에 대한 보호와 양육이라는 개념이 탄생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근대적인 교육개념이 탄생한 것이라 나는 판단한다. 

사실 자유라는 것은 다른 어떤 개념보다도 우선되는 것이며, 개인과 사회가 발전되기 위한 기초 토양이다. 행복한 나라라는 개념은 사실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즐거운 삶이란 사실 자유로운 삶의 동의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친구들이 가끔 '나 행복해' 혹은 '나 지금 엄청 즐거워'라는 말을 쓸 때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사실 그 말은 '나 지금 자유롭다'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고 있는 것 같은 부분을 관찰할 수 있다. 여행을 할 때 행복한 이유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일을 할 때 일이 즐겁고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단순히 그들에게 여가 시간을 많이 준다거나,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일이 즐거워지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자유가 늘면 늘 수록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 때문에 CEO에 위치한 사람이 가장 즐겁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CEO들은 책임과 재정적인 압박 때문에 매일 미칠 것 같다고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모든 직장인 중에 가장 즐거운 건 맞다. 그렇게 즐겁지도 않은 일인데 그런 압박을 느끼면서도 그 일을 할 이유가 또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자유에 의해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자유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즐겁다고 말하지만, 그건 일종의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고 혹은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자유도가 꽤 높기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승진해서 높은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선 결국 자신의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자유를 죽이고, 자신의 상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성공한다. 부하는 상사의 뜻을 철떡같이 알아듣고, 그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고, 상사는 다시 자신의 상사의 뜻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회사 모두가 자신의 자유를 희생해서라도 따라야 하는 사람은 고객이다. 고객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자유를 죽여야 한다. 따라서 회사란 본질적으로 자유를 희생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내가 지금 회사 다니기 싫다고 이런 글 쓰는 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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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