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2. 23. 21:16

작가 : 보후밀 흐라발 (체코 작가) / 이창실 옮김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발행 : 2016년 7월 8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2월 13일 


이 책은 반복되는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주인공 한탸는 늙은 폐지 압축공(처리공)입니다. 그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많은 장서들을 마주하고, 그것들을 압축하여 버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버리고야 말 책들을 읽고, 그 과정에서 철학자와도 같은 교양을 쌓습니다. 

직설적인 언어 습관 속에 살아가는 제게 이 책은 명백한 답으로서 이야기 하기보다는 혼자 시를 읊조리듯이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영화들은 차라리 강하게 자신의 말을 외치기라도 했지, 이 책은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면서 갈피잡기 어렵게 움직입니다. 

'사람에게서 남는 건 성냥 한 갑을 만들만큼의 인과, 사형수 한 명을 목매달 못 정도 되는 철이 전부라는. '

'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한탸를 둘러싼 인물들. 

지나간 과거, 고물을 모으는 외삼촌. 우리 시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인간과 무엇 하나 다를 바 없이 두 파로 나뉘어 세력을 다투는 생쥐, 두 번이 똥 물을 뒤집어 써서 고통 받은 만차, 예수의 모습을 하고 그를 찾아온 두 집시녀, 꼬깃꼬깃 구겨진 10코루나를 건내는 노교수, 한탸의 은신처로 들어와 함께 지내다 게슈타포에게 잡혀 죽어간 집시녀.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명확한 시작과 끝을 제시하지 않고, 마치 과거로 퇴보하듯이 책을 이끌어 나갑니다. 

' 예수가 낙관의 소용돌이라면, 노자는 출구없는 원이다. (중략)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야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좀 어렵습니다. 

이미 독자들이 몇 가지 개념들, 철학들, 사조들을 다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전제가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수와 노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괴테, 체흐, 고갱, 실러, 에라스뮈스, 니체, 피카소... 여러 고전과 고대, 중세와 근세, 근대와 현대를 망라한 예술가들이 언급됩니다. 

그들을 읽고, 보고, 들었던 사람은 책이 내뿜고 있는 괴이한 향체를 저와 같이 얄팍한 사람들보다 더 깊게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근원으로의 전진),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미래로의 후퇴) ' 

<3줄 요약> 
- 움베르트 에코가 술 취하고 쓴 것 같은 책입니다. 
- 옴니버스인 듯 옴니버스가 아닌 구성입니다. 

- 어려운 책입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