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3. 22. 22:38


저자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옮긴이 : 유혜자 
출판사 : 열린책들 
초판 발행일 : 1992년 11월 25일
전자책 발행일 : 2015년 3월 10일 

1. 책에 대한 느낌 
이 책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 본 좀머 씨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화자는 뜬금없이 자신이 팔을 벌리고 바람에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하늘도 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키가 작고, 몸무게가 가벼워서 조금만 거센 바람이 불어도 하늘을 날 수 있었겠지만, 다시 착륙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어릴 적에 나무를 잘 타서 정말 높이까지 올라가곤 했지만, 나무에서 떨어진 후로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던 이야기. 학창시절 좋아하던 여자애가 자신과 함께 하교하자는 이야기에 혼자 너무나도 설레하다가, 그 아이가 약속을 취소하면서 크게 좌절했던 이야기.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노처녀인 미스 풍젤 선생에게 갔다가 연습을 안했다고 크게 혼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비난하며 분해하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다들 얼마나 슬퍼할지를 떠올려 보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이야기. 그리고 너무나도 신비하게도 혹은 끔찍하게도 죽어간 좀머씨의 죽음. 

이 책의 전체적인 얼개와 흐름은 마치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다시 담아온 것 같은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2. 인상 깊은 문장과 감상
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더 심각하게는 도대체 내가 다시 땅으로 내려올 수 있을 것인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소설 가장 초반부에서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만 날개처럼 활짝 펼치면 얼마든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날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시 땅에 내려올 때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죠. 

이 장면은 소설 가장 후반부의 좀머 씨의 죽음과 크게 대비됩니다. 주인공은 좀머 씨가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합니다. 이와 동시에 좀머 씨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죠. 하지만 좀머 씨는 두려움에 상관하지 않고, 호수를 가로질러 걸어갑니다.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왜 작가는 이런 대비 효과를 보여주었던 것일까요? 이런 대비 효과로 인해 좀머 씨의 죽음은 미묘한 감정으로 소년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나 잘먹고 잘해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는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소년이 노처녀 피아노 선생님에게 혼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했던 이 생각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소년의 상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좀머 씨가 외치는 상상이었다면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에서 좀머 씨는 좀머 씨라는 개별 객체로서 등장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소년의 모습이 되어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전체 맥락에서 읽으면 이 대사도 아주 그럴싸해지기도 합니다. 나도 어릴 적에 저런 생각을 하곤 했었지. 그리고 그 점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잘 꾸며져 왔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이 책을 다 보고 나서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니, 이 책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본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홀로 방안에 갇혀 있길 원하는 '은둔자'였으니,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좀머 씨의 신경질적이면서도, 고독한 모습은 저자 자신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는 것이었죠. 

그 해석에서 기반하여 보았을 때 이 책에서 좀머 씨가 외친 대사인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말은 좀머 씨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향한 자신의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소설 속 주인공이 호수 속으로 들어가는 좀머 씨를 보며, 이 말을 떠올린 것도 실은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저자(좀머 씨)를 바라봐주길 바란다는 해석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좀머 씨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 하는 것과 동시에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품게 되는 생각들을 고스란히 내비치면서 저자 본인도 같은 경험을 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이를 통해 어느 순간 우리는 소설 속 아이가 되기도 하고, 혹은 좀머 씨가 되기도 합니다. 

3.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 
1) 소설 속 주인공이 경험했던 5가지의 이야기들을 실제 여러분도 어린 시절 경험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나무를 타며 놀았던 경험 / 첫사랑 / 노처녀 피아노 선생님 /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슬퍼할 사람들을 고소해 하는 상상 / 동네 바보 혹은 괴짜에 대한 이야기) 

4.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아홉살 인생
- 책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그냥 어린 시절,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3줄 요약
-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소설 
- 어린이의 모습으로 혹은 괴짜 좀머 씨로 대표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
- 두려움에 살아가는 사람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