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미분류2018. 2. 14. 23:23

저자: 채사장
출판사: (주)웨일북
초판 1쇄 발행: 2017년 12월 24일
전자책 발행: 2018년 1월 12일

1.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책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책을 쓰라고 했더니만 아주 일기장을 써서 출판했구나.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이 비범하고, 많은 글을 써본 경험 덕에 글이 매력적이어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이렇게 책을 썼다면 꽤나 욕을 먹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3 시절 나만의 수필집을 펼쳐놓고 써놓은 글 같기도 하고, 싸이월드나 싸이월드에 써나간 오글거리는 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계속 생각이 발전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채사장 본인이 10년 뒤에 이 책을 다시 보면 부끄러움에 책을 던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글을 서술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전의 다른 저서들보다도 훨씬 확신에 찼다는 생각도 들었고, 선지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준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직 저자는 30대 후반일텐데, 마치 죽기 전에 쓰는 글처럼 자신이 넘쳤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원래 이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 

2. 관계와 존재의 이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수필의 형식이긴 하지만, 옴니버스 단편의 묶음집이라기보단 하나의 주제를 따라 움직이는 장편에 가깝다. 항상 채사장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작가는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책을 쓰길 선호하는 것 같다. 매번 이전의 작품과 지금의 작품의 경향성이 확 바뀌어서 실험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보통 이런 비소설 책들은 책의 가장 앞단에 강렬한 주제의식을 선보이고, 뒤로 갈 수록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뒷편으로 갈 수록 주제가 점점 강해지면서 결국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이 뒷쪽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론과 본론의 부분은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차근차근 배경을 쌓아나가는 느낌이고, 이를 바탕으로 결론에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쏟아낸다. 

책 후반부에 채사장이 예시로 들었던 '최초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인상이 깊다. 

나도 신이라는 존재가 만일 있다면, 대체 신은 왜 있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신의 삶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었기 때문이다. 

채사장은 인간의 삶의 목적을 신(최초의 의식)의 존재 목적과 결부시켜서 교묘하게 전체를 조망한다. 이런 종류의 생각이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나도 생각해봄직한 이야기인데, 채사장은 이걸 하나의 책으로 완결시켰다. 그 점이 내겐 참 좋았다. 

3. 힘써 노력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얼마 전 토론 모임에 나가서 '평생 가장 노력했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고시 시험을 치기 위해서 힘써 공부했었던 시간이나, 혹은 고3시절 수능을 위해서 준비했던 시간, 또는 공무원 시험을 치려고 고시생활을 했었던 경험들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난 사실 그런 종류의 노력이 진짜 노력인지 의심이 들었다. 사실 고3 시절의 노력이라고 하는 건 내 노력의 범주가 극히 한 가지에 집중되었던 것 뿐이지 않을까? 난 내가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시간들을 노력하며 보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오늘 하루도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이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항상 극단적인 상황들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이나 고3시절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거겠지.

사실 고3 시절에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그 때는 인간 관계에 대해서도 별로 노력하지 않았고, 무언가 먹고 마시고 고르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 집안일이라던가 돈을 버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어떤 대학에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에 대해선 조금은 고민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성적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부분이라 고민은 가장 끝자락으로 미뤄두곤 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고3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노력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냥 공부 하나만 했다. 가끔 공부말고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놀기도 했는데, 정말 그 두 종류의 일 외에는 어떤 고민도 없었다. 

채사장의 새로운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도 이런 노력에 대한 부분을 다룬 파트가 있어서 반갑다. (앞서 내가 말한 내용과는 핀트가 조금 다르지만) 채사장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통념과는 반대로 흔한 것은 이들이다. 한 가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한 가지 목표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다. 이들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이유는 이들이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들이 나약해서다. 현실에서의 경험이 부족하고 세계의 복잡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들은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 분명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이것에 집중하겠다는 단순한 전략을 세운다. 

4.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3줄 평 
- 자신감이 팍팍 넘쳐나는 책 
- 저자가 가진 참신한, 그리고 놀라운 생각들이 멋지게 정리되어 있다. 
- 이 책 참 괜찮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