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7. 3. 23:32

저자 : 아니 에르노 / 옮긴이 : 최정수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2001년 6월 20일 
전자책 발행 : 2016년 12월 12일 

1. 사랑하다, 헤어지다, 다시 만나다, 스러지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 책에 쓰여진 이야기들을 어렴풋이나마 나만의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내가 만일 우연히라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면, 정말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는 위기에 놓였더라면, 그것을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어설픈 프리즘으로 마주하는 상황에 처했더라면, 난 과연 어땠을까. 

작가가 실제로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고 소설을 썼을 리가 없다. 만일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면 '이게 뭔 헛소리야'라고 치부했을 것만 같다. 다행히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 노래들은 솔직하고 거리감 없이 열정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말해주었다. 실비 바르탕이 노래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를 들으면서 사랑의 열정은 나만이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는 그 당시 내 생활의 일부였고,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었다. 

내게도 노래가 훅 파고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지금은 열심히 거부하고자 하지만, 당시 난 운명론에 빠져 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읽었던 문구엔 그런 감정을 뇌에서 오고 간 호르몬 작용이라 치부했지만, 그게 뭐 어때서. 호르몬이 나오는 건 나오는 거고, 내가 좋은 건 좋은 거였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심도는 주인공이 A와 헤어진 순간에 나온다. 정말 사랑한 사람과 헤어지고, 그 사람이 떠나갔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의 흐름이 이 짧은 소설엔 정말 잘 응축되어 있다. 내가 마주했던 그 사람.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장소와 물건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이 그 사람 이외에는 어떤 의미도 없이 멈춰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꺼풀이 벗겨지듯 제 색깔을 되찾아 오는 것. 이 소설은 그런 부분들을 정말 잘 공감가게 엮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게 세상은 A 없이도 다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일까? 수많은 영상과 몸짓과 대화가 있었던 그 사람과의 첫날밤 이후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 모스크바의 고양이 조련사, 목욕 가운, 바르비종 같은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쓰이지 않은 열정적인 소설의 텍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서서히 스러지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2. '단순한 열정' 3줄 평 
- 짧지만 매혹적이다. 
- 이처럼 사랑의 감정이 껍질까지 세밀히 묘사된 책도 생각해보면 드문 편이다. 
- 초봄 같은 소설이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