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6. 11. 23:59

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옮긴이 : 전미연
출판사 : 열린책들
초판 1쇄 발행 : 2017년 5월 30일 

1. 어쩌면 블랙홀 
어릴 때 꿨던 꿈 중 하나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어둡고 축축한 방. 고작 1평도 안되는 좁은 방에 갇혀 있었다. 내 눈 앞엔 두꺼운 철문이 있었고, 나머지 삼면엔 곰팡네 나는 책장이었다.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내 손과 발은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었다. 입엔 재갈이 물려 있었고, 문 밖에선 누군가 '쿵, 쿵'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 내가 지르는 소리에 잠이 깨셨다. 내가 꿈을 꾸다 놀랐다는 걸 아신 엄마는 날 안심시키려 했다. 난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 땐 꿈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마치 꿈꾸듯 앉아 있던 난 축축한 이부자리 위에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땐 그랬던 거 같다. 현실과 꿈에 경계가 희미했다. 어두운 저녁에 길을 걷다가도 귀신이 보이는 것 같았고, 꿈을 꾸면 그 꿈이 생생하게 나를 괴롭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꾼 꿈이 뭐였는지 기억을 못해도, 꿈은 그 자체로 의미가 강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 저녁엔 꿈에서 무얼 볼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 같다.  

나이가 들면서 꿈꾸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어릴 땐 꿈을 기억못해도 꿈을 꾼다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되면서 내가 꿈을 꾼다는 것 자체마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난 꿈을 꾸지 못하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에 따르면, 성인이라도 인간은 반드시 꿈을 꾼다. 아마 내가 현실에 압도되어 꿈을 전혀 기억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꿈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만큼 생생히 남아 있다. 꿈을 꾸지 못하는 지금도 내가 그것을 기억하길 소망한다. 어쩌면... 아마 내가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 '인셉션'처럼. 영화 '인셉션'이 매력적인 이유는 장자의 꿈 이야기를 시각화 했다는 점 아닐까?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흥미롭다. 사실 영화 '인셉션' 이전부터 이 아이디어는 영화계에서 훌륭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있으니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서 만들어진 가상 공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상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구하러 온 현실 세계의 '모피어스'에게서 파란 알약을 먹기 전까진 완전히 속고 있었으니까. 

인셉션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영화를 다 보고 난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라?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착각을 느낀다. 처음 인셉션을 봤을 때 망치로 얻어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얄팍한 믿음 위에 지어진 것이구나, 새삼 놀랐다. 뻔히 알고 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음에 놀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이란 책도 이런 종류의 책이 아닌가 싶다. 어디선가 다 들어봤던 이야기이고, 소재이긴 한데, 그 모든 것들이 뭉쳐서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었을 때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아마 이 소설을 쓰기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저게 대체 뭔 말이지?' 싶은 부분이 나온다. 바로 블랙홀에 들어간 주인공이 과거에 있는 딸과 마주치는 장면이다. 블랙홀 속에서 현실을 향해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벽을 치지만, 현실은 책 몇 권이 떨어질 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딘가 벽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시공간을 꿈으로 치환하여 같은 공간을 그려낸다.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마주치는 것은 같지만, 그 공간의 구성은 매우 유사하다. '클라인의 병'. 

이 소설의 시작이자 끝이 바로 이 병의 구성과 맞닿아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던 부분이 이 병의 구조를 통해 명확하게 그려진다. 

2. '잠' 3줄 평 
- 신비롭고, 압도적이다. 
- 영화 '인셉션' 혹은 '인터스텔라'가 떠오른다. (실제로 이 책은 인터스텔라 OST를 들으며 쓰여졌다고 한다.) 
- 살면서 가끔 그런 영화나 책이 있지 않은가? 내 상상의 지평이 넓어지게 한 것 같은 이야기. 이 책도 그런 이야기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