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8. 5. 20. 23:26
너희는 내 생강이 궁금할 거다
내 살아 있는 생강에 관해 이야기해 주지

그것은 저몄을 때 코끝을 잡고 비트는 진하고 날카로운 냄새, 하나의 묵직한 빗이다
그 빗으로 얼룩 고양이의 몸을 빗겨 주면 녀석은 천 일 밤낮을 자지 않고 지나는 길마다 달빛이 생강의 속살처럼 반짝이며 흐르는 강을 파 놓을 거다
살아 있는 생강? 그것은 춤추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 
젖가슴과 엉덩이가 전부인 구석기 여자의 몸에 떨어진 풀잎은 태고의 리듬이다 생강의 주름들은 그루브다 
그렇지, 살아 있는 생강은 11센티미터의 이형 성기다
의사가 고래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가 간호사들이 지르는 비명에 고막이 찢어져 오른쪽 왼쪽 모두 스무 바늘을 꿰매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곧 생강의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살아 있는 생강,
나는 그것으로 공작새와 코뿔소를 잡을 거대한 엿을 만들었다
공작새와 코뿔소는 생강엿을 핥다가 그 속에 부리도 집어넣고 뿔도 집어넣고 깃과 샅까지 넣은 채로 아름다운 빙하가 될 거다
그 빙하는 9만 년 뒤에 다시 나타나 투명한 몸을 녹일 테고
여전히 고양이와 간호사와 코뿔소와 너희는 내 생강을 사랑할 것이다 
- 배수연 시집 <조이와의 키스> 中 - 

생강처럼 쨍하게 매운 향이 생각나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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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