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8. 4. 8. 23:53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中 - 

3자의 시점으로 나를 바라볼 때 가끔 나의 행동이 괴이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고민이 들 때도 있다. 연기를 해볼까? 지난 번에 봤던 드라마 주인공처럼 행동해볼까? 평소 내가 이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을 말을 거침없이 말해보는 시도를 할까? 생각은 자주 해도 그걸 행동으로 옮긴 일은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보통 한 사람에게 같은 캐릭터를 기대한다. 소설 속에서 입체적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1번 이상 성격이 변하는 걸 보면, 우린 '이상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같은 방식으로 내 행동이 사람들의 기대치를 계속 어긋날 경우 나는 단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어쩔 수 없다. 연기하는 수밖에.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