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술래는 아이를 궁금해하고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궁금함을 앓고 있다.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빌딩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어쩔 줄 모르게 된다.오늘은 내가 무수했다.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中 -
3자의 시점으로 나를 바라볼 때 가끔 나의 행동이 괴이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고민이 들 때도 있다. 연기를 해볼까? 지난 번에 봤던 드라마 주인공처럼 행동해볼까? 평소 내가 이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을 말을 거침없이 말해보는 시도를 할까? 생각은 자주 해도 그걸 행동으로 옮긴 일은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보통 한 사람에게 같은 캐릭터를 기대한다. 소설 속에서 입체적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1번 이상 성격이 변하는 걸 보면, 우린 '이상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같은 방식으로 내 행동이 사람들의 기대치를 계속 어긋날 경우 나는 단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어쩔 수 없다. 연기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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