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의 도서관화에 관한 생각 

얼마 전에 읽은 기사 하나가 흥미로웠습니다.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간단히 요약하자면, 대형서점이 갈 수록 도서관처럼 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지도 않으면서 읽고 훼손하느라 출판사들이 큰 손해를 입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용이 꽤 화제가 되었는지 인터넷에서는 나름 많은 조회수를 이끌었고, 이에 대한 여러 서평 기사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서평 기사들은 보통 아래 2가지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1) 출판사들에 따르면, 대형서점의 도서관화로 출판사들의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대형서점의 의견에 따르면 꼭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형서점들도 견본책들에 대해서도 잘 관리하고, 오히려 매출은 올라갔다고 한다. 

2) 서점에서 책을 훼손하면서 읽는 사람들은 올바른 교양시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책을 깨끗하게 읽자. 

대형서점의 주장과 출판사들의 주장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파고들어서 질문하는 기사들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대형서점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도서관처럼 꾸미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 원인에 대해서 분석하는 기사도 없더군요.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간(5년 이상)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출판업계의 대대적인 매출감소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 기사들은 마치 대형서점들이 중소서점들을 몰아내고 악독하게 독과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때려대지만, 실상은 대형서점들도 자신들의 매출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최근 자료들을 살펴보면 대형서점의 매출은 몇 년 째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서정가제에 힘입어 영업이익은 증가하고 있습니다만) 대형서점 이상으로 더 큰 타격은 중소서점들입니다. 중소서점들 중에서 살아남는 중소서점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아주 일부만이 카페+서점의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남고, 많은 영세 서점들은 점포를 닫았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대형서점만이 매출이 아주 조금씩만 떨어지는 수준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데, 이 매출의 대부분은 책을 통해서 유지되기보다는 책이 아닌 다른 부분들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서점에 비치하는 각종 전자기기와 문구류, 장식품 그리고 서점 안의 카페와 식당들입니다. 대형서점을 오랫동안 관찰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대형서점의 공간에서 점점 책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책이 사라진 위치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들여놓는 것이지요. 대형서점들의 매장을 관리하는 마케터들이 바보는 아닐 것입니다. 나름의 데이터와 합리적인 판단으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했던 판단은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을 서점에 끌고 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점에 온 사람들이 전자기기를 보고, 문구류를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책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지요. 

대형 책 테이블이 있어서 책이 훼손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출판업계에서 매출이 감소했다는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일부 사람들을 보며 놀랐습니다. 대형 책 테이블이 있기 이전에는 서점에 가본 적이 없는 것일까요? 서점에 앉아서 책을 비치할만한 공간을 마련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대형 서점 한켠에 가면 벽 한 귀퉁이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책을 여러 권 자신들의 자리로 가져와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듯 책을 읽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가 아닌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두고 읽었는데, 그 당시 훼손됐던 책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이미 책에 손 때를 묻힌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대형서점의 많은 책들이 함께 훼손되었지요. 

대형서점에 있는 책이 훼손되더라도, 책을 읽을 사람은 반드시 책을 사게 되어 있습니다. 한 권이라도 더 책을 사고 싶어서 안달난 상황이라면 아무리 책이 훼손됐더라도 당장 그 책을 사고 싶을테니까요. 그리고 서점엔 언제나 책은 보지 않고 책만 읽고 가는 눈팅족들과 책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 무매너들은 90년도에도 2000년도에도 그리고 현재도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서 벌어진 일을 두고, (물론 잘못된 행동이지만) 엉뚱한 결론을 내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뻔한 결론을 내릴 바에는 당장 나가서 책이라도 한 권 더 사서 읽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