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독서

어머니도 나름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언제 한 번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같은 책들이 흥미가 생긴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도 읽어보았냐고 물었죠. 당연히 읽어보았다고. 혹시, '데미안'이라던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책도 읽어보았나요? 읽어보았다고. 아니, 매일 거실 소파에서 시어머니가 소리치는 주말 드라마나 보는 아줌마가 별 책을 다 읽었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주장에 따르면, 젊었을 적에는 TV에 나오는 재밌는 드라마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 주장이 정말 진실이라면, TV가 널리 보급 되기 전 대한민국은 교양 시민으로 넘쳐나는 문화의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끔 어떤 책을 읽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제게 독서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함께 사는 다른 누군가에게, 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 혹은 친구들에게 제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독서란 건 원래 공동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은 왕왕 접할 때가 있습니다. 거실 한 쪽에 앉아서 안경을 끼고 공부하는 자세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편으로는 '내가 저 모습을 닮아서인지, 뭔가 남들에게 내가 뭘 하고 있다고 뽐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버지가 실제로 그런 생각으로 거실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머니가 생각보다 대단한 다독가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실제로 그녀가 독서가로서의 지식을 뽐내는 모습은 어디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슨 이야기를 듣더라도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인양 행동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나중에 가서 '정말 몰랐냐'라고 한다면 '들어본 것 같긴 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는데도 적당히 봐준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어머니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뽐내는 것보다는 남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는 것에 더 특화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책에 대한 소유욕도 그다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의 독서력에 대해서 의심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부분 남들에게 빌린 책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살펴보고, 직접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큰 욕심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놓은 책에 먼지가 쌓일 것을 염려하는 분이지요. 이런 면에서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사서 집에 쌓아둔 제 허황된 모습을 반성합니다. (라고 써놓고 실제로는 반성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