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읽기

살면서 가장 최초로 읽은 책을 고르라면 전 해리포터를 고를 것입니다. 처음 그 책을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교실 창가에서 3번 째 줄 정도에 위치한 곳에 그 책을 읽고 있는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단발보다는 다소 긴 머리를 갖고 있던 애로 기억됩니다. 제겐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는데, 그 애의 사촌이 미국에 사는 교포라, 일주일 간 우리 학교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이벤트를 거친 후에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여자애가 부반장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 길에 그 여자애 책상에 남겨진 해리포터 1권-하편을 보았습니다. 당시 보기엔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100편 동화집 같은 것들이라, 그 책은 꽤나 어른스러워 보였습니다. (해리포터를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 그 의견에 반대합니다만,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해볼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날, 그 친구에게 해리포터 책을 빌려서 읽어봤습니다만, 솔직히 초반 10페이지는 굉장히 재미없었습니다. 그냥 읽지 말까 생각했습니다만, 그 애도 읽은 건데 왠지 포기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천천히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날 저녁 시내 서점에 나가 1권 상, 하권을 모두 사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하루만에 모두 다 읽어버렸습니다. 

두꺼운 책을 두 권이나 읽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서점에 가서 어른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 때 카프카나 도스토예프스키, 혹은 밀란 쿤데라와 같은 책을 읽었다면 미래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당시 서점 상황 상 어려웠을 것입니다. 애초에 그런 소설가들의 제대로 된 번역본은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고른 책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비야는 세계 여행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로 유명했었고, 그 유명세를 이어 중국 여행기를 썼던 것입니다. 이 책의 매력에 빠져 한비야와 같은 해외 봉사자가 되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이 때문에 영어를 전공한 면도 있으니, 어찌어찌 생각해보면 제 미래는 해리포터가 결정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해리포터는 그 뒤로도 꾸준히 읽었습니다. 1부 마법사의 돌에 이어,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 불의 잔, 불사조 기사단, 혼혈 왕자, 죽음의 성물 1,2부에 이르기까지 소설을 쭉 다 읽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영화도 전부 보았습니다. 이왕 한국어로 다 읽었으니,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영문판도 모두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3부 이후로는 너무 두꺼워서 사놓고 다 읽지도 못했습니다) 시리즈를 다 끝내고 나서 아쉬운 생각은 없었습니다.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읽었던 터라 애착이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신비한 동물사전이 스핀오프 작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소설이 아니라 영화로만 보았습니다. 흥미롭게 보긴 했습니다만, 굳이 책을 찾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