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4. 15. 23:34
어릴 적에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살면서 불과 10 평방미터 내의 공간에서 혼자 산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까? 공간 한 가운데 서 있으면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활짝 팔을 펼쳐도 벽에 손이 닿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공간이 움직인다면, 나는 제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움직인다는 착각 속에 살 수 있다. 만일 나의 시각과 후각, 촉각 등 각종 감각이 조작된다면 나는 공간 안에서 홀로 있으면서도 마치 일반적인 인간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착각할 수 있다. 만일 나에게 사회적인 정보가 오고가는 것처럼 조작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나 하나 뿐일지라도 마치 내가 수십 억 지구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나의 몸이라는 건 아프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하고, 빈약하기도 하고, 튼튼하기도 한다. 운동을 하거나 폭식을 하거나 굶주리거나 많은 잠을 자거나 꿈꾸거나 활동하거나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몸의 상태를 바꿀 수 있을텐데, 그 모든 것 역시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난 그냥 상자 속에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군대에 있을 때, 무슨 맥락인진 몰라도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난 이등병이었고, 내 선임은 상병이었다. 선임에게 말했다. 군에 있으면서 군 전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의 전 쓸모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선임이 말했다. 넌 그냥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돼. 

비슷한 맥락이 많다. 사람들은 사실 자기 주변 일부 사람들의 행동에만 관심을 두지, 그 외에 자신의 관심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냥 적당한 통계치에만 관심을 둔다. 서울시민은 몇 명이고, 20대는 몇 명이고, 여자는 몇 명이고, 출산율을 얼마고, 취업률은 얼마고. 세세한 인간으로 파고들어갔을 때 그들이 얼마나 쓸모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한심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사실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나 자신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살아가며, 그와 연관된 몇 명에게 일부 신경을 써줄 뿐이다. 

예전부터 그런 게 거슬려서, 사람 사는 게 참 외롭구만, 이라 생각하긴 했는데 굳이 내가 외롭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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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