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4. 17. 23:50
예전에 식물에게 칭찬하는 말을 하고, 예쁜 말을 하면 식물이 잘 자란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반대로 식물에게 욕설을 하거나, 못된 말을 하면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굳이 의사소통이 통하지 않는 식물을 매개로 그런 실험을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굳이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내 자신이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반응하는 양상만 살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직접적인 욕설이 아니더라도, 나와는 관련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좋지 않은 말이나 욕설일 경우 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수련회 같은 곳에 가서 이런 체험을 해봤다. 커튼을 친 무대 위에 올라가서 평소 하지 못했던 욕설을 마구잡이로 날려보는 체험이었다. 주최측에서는 평소 대놓고 욕설하지 못하고 예의바름을 꾸며야하는 학생들이 속 시원하게 욕설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의도였다. 실제로 그 의도가 좋았다. 친구들도 그런 시도를 꽤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근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쉬지않고 욕설을 하다보니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욕설이 다시금 내 귀로 들어와 내 기분을 망가트렸다. 한 번 욕설을 하고 나면 더 강한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느 순간 욕설이 욕설 같지 않고, 내 자신에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일종의 부정적인 말 효과였을까. 

악과 맞서 싸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악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난 단지 나의 기분을 풀기 위해, 그리고 나의 상황을 토로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말을 했을 뿐인데, 그렇게 내가 내뱉은 부정적인 말이 다시금 나를 더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순간, 슬픈 순간이 있을 때마다 그걸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뒤편으로 숨겨두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 그걸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속 시원하다고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건 내 일상을 잡아삼키는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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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