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3. 25. 21:59
남들보다 위대해져야 한다는 생각 

어릴 적에는 남들보다 더 위대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찍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 관심을 둔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삶이 그들에게 부여했던 어떤 결핍에서 비롯한 경우도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내 스스로가 우월하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위대함"에 관한 것이었다. 영어를 전공으로 선택했던 것은 내가 남들보다 영어에 관심을 갖거나 영어가 재밌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외국어라는 속성이 가져오는 확장성과 위대함 때문이었다. 영어를 남들보다 잘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에 관해서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별로 내게 조언하거나 간섭하지는 않았다. 혹은 그가 내게 했던 각종 간섭에 관하여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난 그가 아무런 조언이나 방향제시를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입장에서 꽤 적절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내게 어떤 조언이나 간섭을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이왕 네가 외국어를 배울 생각이라면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성장 가능성이 높으니, 중국어를 공부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던가 '언론 쪽에서 일하려면 언론정보학부라던가, 관련 학과로 진학하라.'라던가 하는 조언들은 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그런 말을 해주었다면 내 삶의 궤적이 꽤나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그는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방향으로 진학한다고 해서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리라는 확신은 없기 때문이다. 혹은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삶에서 다른 가족의 의지로 인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으로 인해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당했고, 그것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는 현재의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내게 매우 생소했던 분야, 내가 관심갖고 싶지 않았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비난한 뒤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과 동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원천적으로 모르는 분야라서 많은 공부도 뒤따라야 한다. 사실 회사에서 퇴근한 후에도, 그리고 주말과 휴일에도 끊임없이 그것을 익히고 공부하느라 다른 모든 개인의 시간을 쏟는 것이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모한 시간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직업의 명칭이 '마케터'인 이상 그 직업이 지칭하는 가치는 '내가 판매하는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노동'을 하는 것이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 제품의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더 효용을 높일 수 있는 생각을 짜내는 것이 마케터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내 주변에서 요청하는 일을 빨리 해결해버리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내 자신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것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을 더하려고 하는 순간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느낀다. 그리고 나서는 내 자신에게 다시 묻게 된다. '정말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내 스스로가 공부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희생하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일하는 것에 집중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다시금 묻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위대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하찮다고 생각했을까. 정말 위대한 것이란 어떤 것일까.'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