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3. 23. 17:48
2016년도 9월에 썼던 글을 포스팅 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던 것인지 기억도 안나네요. 

너도 같은 부류잖아. 
사람은 나에게 있어 부차적으로 붙어있는 것이었고, 대화라고 하는 것은 본능이 아닌 기술이었다. 대화의 소재는 끊임없이 새로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핑계대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혹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을 하면서 자신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들만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적절한 대화라고 생각했었다.  

우리에게 있어 이야기의 중심은 항상 ‘나’에게 있었다. 대화에서의 타자는 대화의 과정 속에서 흘러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하수도 속 오물들과 비슷했다. 오물로서 들어왔던 그들은 '나'라는 하수도를 더럽히는 오물이기도 했지만, '하수도'라는 나의 존재 의미를 유지시키는 역할도 함께 갖고 있었다. 

사람은 고풍스러운 18세기 벽 장식에 걸린 ‘백인의 살색으로 가득찬’ 초상화를 보면서 사람들 속에 가득 담긴 허세와 진실을 살펴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초상화 속 여 주인공의 살색 맨발로 시선을 돌리면 그녀가 더러운 오물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건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못본 척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초상화에서 고개를 떼어버린 순간, 우리의 시야 밖에 있는 초상화에는 나체의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 키메라와 같은 형태로 동물 대가리를 달고 형형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상화 속에는 여자의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쪽에는 개구리 남쪽에는 독수리 서쪽에는 원숭이 동쪽에는… 문이 달려있다. 그 문을 열고 초상화에서 나가 버렸을 때 나는 영화 어딘가에서 봤던 것처럼 방 안에 아무런 창문도 없이 그저 사방에 초상화가 하나 씩 걸려 있는 것을 상상해버리고 만다. 한 쪽에서 시선을 피해도 다른 한 쪽에서 그들은 동물의 대가리를 나체 위에 걸어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키메라의 검은 홍채는 나의 홍채와 맞닿아 있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나의 홍채와 겹쳐 있는 것 같은 상상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속삭인다. '너도 같은 부류잖아.'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