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3. 11. 11:50
상처 받는 것에 관하여

" 너, 진짜 못생겼다. " 

가끔 입에서 무식하리만치 거센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 날도 술을 마신 탓에 술기운에 그런 이야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태어나서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같은 잘못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건 어린애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벌써 이건 2번 째 경험이었다. 몇 년 전 술자리에서 진실게임을 하다가 이 중 가장 못생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A'야. 라고 술자리에 있는 친구를 지목한 기억이 있다. 어차피 술기운에 저지른 것이고, 어차피 웃고 넘기는 진실게임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 혼자 진실게임이었던 것이다. 이 실수는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면 안된다, 절대로 진실게임이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실게임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새벽 3시. 취해있었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비스듬히 앉아있던 그 친구의 얼굴이 못생겨 보였다. 속으로 담아둔 말을 밖으로 뱉어 버렸다. 마치 딸꾹질 하듯이. 

" 너, 진짜 못생겼다. "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분노했었다. 그 친구가 밉고 화가났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짜증이 났다. 중학교 때였다. 그 말을 한 당사자가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말' 자체가 문제였다. 그 전까지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개념이 없었다. 그 뒤로 듣게 되는 잘생겼다, 호감형이다, 멋지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 들었던 상처가 자신에게 확대 재생산 되고 있었다. 어릴 적에 입은 상처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는 그런 이야기가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의 '다시재생' 정도의 수준밖에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들이 누구인지도 기억을 못했다. 물론 이건 의식이 쓰는 글이다. 결코 나의 무의식, 이드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 정도는 감안하고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상처 입힌 쪽에서는 상처 입은 쪽의 아픔을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주워 들었다. 

그래서 자꾸 상처 입히는 입장이 되어버렸을 때, 내 자신이 사이코패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또 잘못해버린 상태로 끝나겠구나.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다. 상처 입힌 걸로 고통스럽기는 한데, 불과 1분이 지나기 전에 다른 주제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가고 나면 죄책감은 가볍게 사라져 버린다. (씻겨내려간다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사라진 죄책감에 대해서 '상처 입힌 쪽이 상처 입은 쪽을 이해 못한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입은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떠들어대야 한다. "나 상처 받았어. 상처 받았다고! 내 인생에서 얼마나 그게 큰 상처였는지는 알고는 있는거야? 네가 뭘 알아! 날 좀 이해해 달라고!" 

그것이 매우 구차하다. 나이가 들기 전까지 자신이 상처 받았던 이야기를 숨겨왔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우 구차하고, 고통스럽고, 부끄럽다. 내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서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상처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부끄럽다, 라는 감정이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 그리고 민족이 받은 상처는 정말 거대한 종류의 상처인데, 그런 거대한 상처들이 한 개인에게 덤태기 씌어지면서 매우 개인적인 부끄러움으로 축소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이 결국 나중에 하나로 뭉치게 된 것은 함께 상처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해주면서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외쳐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위안감 아니었을까.

상처가 대놓고 전체의 이념이 되기 전까지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내가 아끼는 가족들에게조차 평생 이해받지 못할 개념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엄마에게서 상처를 위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처 받은 경험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가끔 엄마가 보이는 행동들 '정말 힘들었지? 맞아, 나도 이해해.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 힘들었겠구나.'라는 말들로 인해서 어딘지 모르게 문제가 회피되고 있다는 느낌도 자주 받았었다. 그런 말로 위안받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있어주길 바란 것이었을까. 어쩌면 엄마가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짜증났을지도 모른다. 나와 너의 개인으로서, 그녀도 똑같이 상처 받는 입장에서 왜 그런 어른 스러운 말을 해주었던 것일까? 차라리 떼 쓰듯이 말해주길 바랐던 건 아닌가. 

" 너, 진짜 못생겼다. "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