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3. 10. 21:16

솔직히 이 블로그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과 관련된 이야기만 적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니 부담감이 지나치게 커져서 그런 고집은 적당히 갖다 치워버리려고 합니다. 잡문이라는 카테고리에 '책'이라는 주제만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글이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고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써놓고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이와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김에 2년 전 쯤에 적어뒀지만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던 글을 하나 올리려고 합니다. '책'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는 '저녁 10시'에 관한 글입니다. 


'저녁 10시'에 대한 생각 

저녁 10시와 하루의 보상심리에 대한 생각에 관하여 


애매모호한 10시. 

10시는 하루 중에 가장 애매모호한 기준 시점이다. 


그 전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거나, 일을 했거나, 운동을 했더라도 10시가 되면 그 날 하루 동안 내가 맘편히 쉬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싹트게 된다. 최근에 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퇴근을 해서 10시 전, 9시 50분 쯤에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지만, 10시 후, 10시 10분 쯤에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산뜻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일단 10시가 지나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11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 되고 만다. 아무래도 12시가 되면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 1시나 2시까지 계속 무언가를 하면, '쉰다'는 느낌보다는 '논다'라는 느낌에 가까워 진다. 


이런 기준 시점은 고등학교 때 만들어진 것 같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지방의 비평준화 지역의 공립학교 였는데, 그곳은 항상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라고 쓰고 야간강제학습)을 했었다. 저녁 10시가 지나고 나면 집에 돌아가, 간단히 간식을 챙겨먹으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며 하루종일 공부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했다. 가끔 그런 마음이 지나치게 올라와서, 새벽 3시 4시가 되도록 잠도 안자고 놀았던 기억들이 있다. 12시가 되면 안방에 계시던 엄마가 나와서 한 소리 하시면서, 빨리 자라고 외쳤던 기억에 '아! 12시 부터는 노는 거다!' 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제길! 생각해보니 10시에 야식을 먹는 버릇도 고등학교 때 생겼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저녁 7시 넘어서 뭘 먹는 것은 속이 더부룩해서 지양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학교에서 저녁 10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간식을 나눠주는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었다. 매번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간식을 준비하곤 했었는데, 가볍게 먹을 만한 간식이라기 보다는 피자, 치킨 같은 느끼하고 칼로리 높은 음식들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1년에 두 세 번 먹는 것에 그쳤던 치킨, 피자를 한 달에도 대 여섯번 넘게 먹고 있었으니 부모님들에게도 정말 큰 부담이었겠지만 내 위장에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부담이 부담으로 끝났으면 좋았을련만, 나의 적응력 좋은 위장은 그런 식습관을 평생의 식습관으로 바꿔놓았다. 그 때 이후로 10시는 나에게 있어 간식을 먹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점이 되었으며, 돈에 대한 여유가 넘쳐 흐르기 시작하는 직장인 시절부터는 아주 자유롭게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을 수 있게 되었다. 


10시~12시 사이에 무엇을 하느냐가 내 일상을 바꾼다. 

사실 이런 경험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10시를 기준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했을 것이고, 10시를 기준으로 '공부나 일'과 '휴식과 보상'의 경계를 나눠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치킨 업체들이 가장 영업이 잘되는 시간으로 저녁 10시를 꼽았으니 이 10시라는 시간이 갖고 있는 의미란 아주 흥미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이라는 것은 사실 어떻게 공부하고 일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어떻게 쉬고 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우리가 보통 '쉰다'는 말을 쓰는 기간은 토요일, 일요일의 주말과 휴가를 떠나는 휴가기간이 대부분인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더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 하는 것은 평일에 회사에서 퇴근한 저녁 시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저녁 10시에서 12시 사이의 개인만의 소중한 시간은 우리 삶의 부분들을 완전히 바꿔 버린다. 


예전에 해외에 나가서 어떤 신혼 부부와 함께 집을 공유하며 살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아내 되시는 분이 굉장히 요리 솜씨가 좋고, 말이 재미가 있으며 사람이 다정다감한 매력이 있었고, 남편 되시는 분은 과묵하면서도 친절한 미소로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과 함께 해외에서 집을 나눠 살게 되는 건 내게는 상당한 행운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굉장히 많은 시간들을 함께 공유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저녁 10시에서 12시 사이는 각자에게 독립된 시간이었다. (물론 가끔 10시에 함께 저녁 밤거리를 거닐거나,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런 시간 중에 나는 내 방에 들어와서 책을 읽거나, 느려터진 인터넷을 겨우 연결해서 겨우겨우 인터넷을 서핑하곤 했었는데, 그 부부의 경우 함께 침대에 누워서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그 부부는 함께 해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각자가 즐기고 보고 싶은 것을 위해서 따로따로 가는 경우도 꽤 많았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그 부부가 잠자리에서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난 가끔은 그들의 그런 시간들이 부러웠다. 함께 하루를 정리하면서 각자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삶에 있어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지는 과거의 나의 미미한 경험치를 통해서도 크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0시에서 12시 사이의 휴식시간이 흐리멍텅해지면 그 다음 날 하루 전체의 일상이 흐리멍텅해지기 마련이다. 그 시간 동안 과음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그 다음 날의 정신이 맑지 못하고 숙취로 고생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폭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그 다음 날 더부룩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싸우게 되면, 그 다음 날 전날의 싸움을 돌이켜 보며 마음 고생을 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된다. 그 시간 동안 푹 쉬지 못하고 계속 공부만 하고 있으면, 그 다음 날까지도 공부의 피로로 머리가 계속 아프게 된다. 


생각보다 10시에서 12시 사이의 휴식은 훨씬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뭘 할까? 

사실 뭘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에게 처해진 배경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같은 활동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테니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뭘 할 지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보고, 고민해봤던 결과물을 제대로 실천해 볼 수만 있어도 커다란 만족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저녁 10시 쯤이 되면 너무나도 피곤하고, 단지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서 내가 지금 뭘 해야 좋을 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기가 싫어지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그것이 휴식이 아닌 고통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가끔은 저녁 10시가 되기 전부터 그 시간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지 고민해보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누구나 다 토요일 일요일에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는 것처럼.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