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3. 2. 23:03
집엔 언제나 신 김치가 가득이었다. 손이 큰 할머니 덕에 엄마는 시댁에서 언제나 삼인 가족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김치를 얻어오곤 했다. 김치 냉장고엔 언제나 남는 김치가 가득이었으나, 점심 저녁을 항상 학교에서 먹는 내 덕에 집에 남는 건 언제나 김치였다. 주말이면 나 역시 외식을 하거나 다른 종류의 음식을 먹어보길 소망했으나 그런 바람을 뭉개는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들 끔찍한 김치 찌개 향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토요일 늦은 시간에 일어나 굳이 엄마가 국을 퍼서 내게 차려주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김치찌개를 떠서 아침에 엄마가 해둔 따신 밥과 함께 밥을 먹곤 했다. 돌이켜 보면 그 땐 김치찌개 안에 고기가 있는 일이 참 드물었다. 지금이야 어딜 돌아다녀도 김치찌개 안에 고기가 없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지만, 그 때는 돼지고기보단 캔참치가 더 흔한 일이었고, 그 마저도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당시엔 단백질 균형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터라, 부담따위 갖지 않고 많이도 밥을 퍼 먹곤 했다. 

김치찌개라는 물건을 밖에서 사먹었던 경험은 아마 군대를 다녀온 이후 대학가 근처에 생긴 김치찌개 집이 처음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치찌개라는 음식이 집에서는 흔하다지만 밖에서 사먹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가던 것이었는데, 그렇게나 넓쩍하고 두꺼운 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잘라서 찌개 안에 넣어먹는다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내 후배 녀석은 익숙하다는 듯 고기를 잘라서 찌개를 휘휘 저었다. 

그 뒤론 여기 저기 맛나다는 김치찌개 집을 참 많이도 가보았다. 동네 근처에 있는 맛집에서부터 대학가나 종로나 충무로 근처의 맛집들도 여럿 가보았다. 하나 같이 맛난 돼지고기와 적당히 신 맛의 김치가 일품인 곳이다. 그 중 여럿은 맛있게 계란말이를 만들어서 부드럽고 단 맛을 첨가했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묘하게 김치찌개의 원형으로 남아 있는 맛은, 고기도 참치도 뭐 하나 들어 있지 않은 그저 시고 짠 엄마의 김치찌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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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