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2. 27. 14:07
14시간 비행, 일, 그리고 맥주까지. 
정신차리고 있는 게 힘들었다. 초점도 흐려지고 몸도 무겁다. 추운 건 더 춥게 느껴지고, 무거운 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얼음 덩어리를 이고 있는 느낌인데, 얼음의 이름을 짓자면 시차라고 짓겠다. 

막상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에 한 번 왔다갔다 하는 것에 대해서 별 것 아닌 양 생각했었는데, 몸으로 체험하면 별 일이 된다. 그래서 출장에 다녀왔을 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나 줄만한 선물 없냐'라는 말이 아니라, '시차 때문에 힘들텐데 몸은 괜찮냐' 같은 따뜻한 말이다. 이런 따뜻한 말을 해주는 친구 한 명 없다는 사실에 1초 정도 서운했었지만, 막상 내가 반대 입장이 되도 똑같긴 매한가지. 남이 겪고 있는 고통은 그저 모니터 속 참사와 다를 것이 없다. 

끔찍한 시차 탓에 출장에 복귀한 한 달 동안은 '내가 다신 나가나 봐라'라며 작은 다짐을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다시금 궁둥이가 들썩 들썩 거린다.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 

공항 면세점을 보면 언제나 술장사가 잘된다. 부드러운 와인 같은 술이 아니라 위스키나 중국술 같은 독주가 잘 팔린다. 어릴 적엔 그걸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게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귀국해서 집에 돌아가면 한참을 시차로 고생할텐데, 잠들기 전에 독주를 까서 마시고 나면 술기운에 잠이 솔솔 오지 않겠나.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이왕 사는 김에 친구에게 줄 술도 한 병 사고 싶은데 면세 기준으론 술은 한 병 밖에 안된다. 너무하다. 내가 마실 술, 친구와 함께 마실 술 2병 정도는 살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세금을 내더라도 그냥 사버릴까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주류세가 어마어마하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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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