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2. 22. 23:48
나도 잘 알고 있다. 내 스스로가 어떤 걸 만드는 재능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건 그냥 평소에 지껄이는 농담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재능있는 농담꾼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기가막힌 농담을 만들어낸다. 일단 난 그 농담꾼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만, 일반적인 생각으론 그런 농담의 능력은 모두 재능에 가깝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난 그런 재능이 없다. 

또한 나는 그림에도 재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미술학원을 8년 넘게 다녔는데, 그 덕분에 성인이 된 지금도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왠만한 사람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척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처절하게 능력이 없다고 느꼈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린이날 행사로 그림 대회에 출전했었을 때였다. '어린이 자유 창작'이라는 주제였는데, 그 당시 난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파트'라는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입상은 실패했다. 한참 뒤에 엄마가 내게 고백하길 아들 자식을 그렇게나 오랫동안 그림을 가르쳤는데 어떻게 그런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건지 황당했었다고 한다. 어쩌다 내가 교과서 옆에 그렸던 낙서 그림이 차라리 더 '창작'이라는 주제에 맞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제야 나도 '아하!' 싶었다. 

또한 나는 글에도 재능이 없다. 
내가 타고는 문재가 아니라는 건 고등학교 때 시 대회 때 느꼈던 것인데, 그 당시 내가 썼던 시가 여러 차례 국어선생에게 까이는 걸 경험하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 고찰해본 결과 깨달은 사실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시 창작에는 자신이 넘쳐서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를 하는 등의 시도를 해봤던 경험도 있었다. 그 때도 사실 내 시를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야 했지만, 난 그게 그냥 몰라주는 사람들의 바보같은 소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쓴 시는 그냥 혼자 지껄이는 것에 가까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주제에 어떤 새로운 걸 만드는 걸 난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망할 걱정이 워낙 많았던 탓에 창업은 차마 시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카피라이터가 되겠다고 광고연구원이라는 곳에 가서 광고업에 대해서 공부도 해봤다. 그럼에도 그걸 내가 지금 직업으로 삼지 않았던 건 꽤 많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나의 재능에 대한 염려였다. (사실 이건 핑계다. 주 원인은 다른 거다) 

그래서 지금은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회사에 들어와 있는데, 지금도 여차저차 하다보니 '기획'이라는 걸 내 커리어로 잡아나가게 되었다. 제품 기획 혹은 다른 명칭으로 Product Manager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나가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그리고 또 끊임없이 나라는 놈이 갖고 있는 재능을 탓하게 된다. 애초에 나라는 인간은 만드는 것이라는 걸 할 수 없게 태어난 건 아닐까. 나라는 놈이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걸 세상에 제안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그런 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들이나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뭔 생각으로 이런 길을 택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되내인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증거를 찾고 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아직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 않은 거라고. 운이 아직 차오르지 않은 거라고. 의지가 부족한 거라고. 결국 중요한 건 재능이 아닌 거라고. 재능보다는 시간과 의지의 문제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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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